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쌍산의소 전투지 - 판치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4차선 왕복도로와 터널이 뚫려 있어서 옛 자취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
| 정의 | 1907년 4월 쌍산의소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7 중기의병 |
|---|---|
| 관련 조직 | 쌍산의소(雙山義所) |
| 관련 인물 | 유태경(柳泰京)/신태환(申泰煥)/이윤선(李允先)/임창모(林昌模)/안찬재(安贊在) |
| 관련 내용 |
쌍산의소는 1907년 봄 양회일·임창모·임노복·안찬재·신재의·이광선 등이 화순군 증리를 중심으로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쌍산의소란 명칭은 오래 전부터 현지 주민들이 계당산 일대를 가리켜 '쌍산'이라고 불러온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쌍산의소는 1907년 4월 능주 군아(郡衙) 공격을 시작으로 화순까지 점령한 뒤, 광주를 점령한 후 북상할 계획이었다. 이들은 예정대로 능주와 화순을 점령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노획하였으며, 군아와 우편소·경무서·일본인 상가 등을 불태우고, 일제의 통신시설인 전주와 전선을 절단하였다. 이어 광주를 공격하기 위해 양회일 등은 판치(板峙)를 넘으려는 순간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의진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쌍산의소의 주요 인물들이 다수 체포되었고, 의진은 해산되었다. |
| 참고 문헌 |
양회일, 『행사실기』, 1950. 김정호, 『전남의 옛지도』, 향토문화진흥원, 1994. 조동걸, 「쌍산의소의 의병성과 무기제조소 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4,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0, 41-57쪽.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연구』, 일조각, 2004, 185-22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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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능주군 이십곡리 |
|---|---|
| 주소 | 전남 화순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행사실기』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는데, 도마치로 혼동한 자료도 없지 않으나, 조선시대 지도를 통해 현재의 너릿재가 판치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














판치전투를 기록한 자료(『행사실기』의 가장)
판치를 고증할 수 있는 고지도(『여지도서』화순현 지도)
쌍산의소 판치전투지 전경(현 너릿재 터널)
쌍산의소 판치전투지 원경
쌍산의소 판치전투지 진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