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주면 생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주건물은 멸실되었고, 문간채와 행랑채는 많이 퇴락하여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
| 정의 | 1910년 8월 15일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송주면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0 경술국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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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송주면(宋宙勉, 1856~1910)의 자는 정여(正汝), 호는 규사(圭沙),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는 송치만(宋致萬)과 성주 이씨를 부모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향리에서 학문을 익히다가 기정진(奇正鎭)에게 수학하며 그 문인이 되었다. 그후 1901년 주사에 임명되었고, 1902년에는 향약장(鄕約長)에 임명되었다. 1903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으로 재임하던 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직하였다. 향리에 낙향해있던 그에게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비보가 전해지자 1910년 8월 15일 통감부(統監府)를 질책하는 혈서(血書)를 작성하여 보냈다. 시국을 한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울분을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절명시(絶命詩) 5수를 남긴 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 했으나 가족들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늦은 밤에 가족들 몰래 집을 나와 사평천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송주면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55, 181쪽.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 1986, 100·18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 1976, 240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10, 1978, 820쪽. 송주면, 『규사유고』, 화순군, 2008, 17~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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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 |
|---|---|
| 주소 |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473 |
| 도로명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하사2길 8-4 |
| 위치 고증 | 「송주면 공적조서」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고, 현장조사시 마을 주민 송태규(71세, 화순군 남면 사평리 거주)씨의 증언으로 생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송주면의 문집『규사유고』
송주면 생가 입구
송주면 생가 중앙의 본채 터
송주면 생가 우측
송주면 생가 좌측 행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