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황동윤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당시 건물은 멸실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1920~30년대 전남운동협의회를 조직하고 전남지역에서 사회운동을 주도한 황동윤이 거주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동경노동조합/전남운동협의회/ML재건클럽 |
| 관련 인물 | 황동윤/전협/정준균 |
| 관련 내용 |
황동윤(1905~1950)은 전남 완도 출신으로 1927년 전라남도 완도군 교인동(敎仁洞)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 도쿄로 가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동경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6월 귀향하여 사립학교 교원 및 신문기자로 활동하였다. 1931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종사하다가 1932년 완도로 귀향하였다. 1933년 5월 완도군 등지에서 전남운동협의회 조사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전남지역 운동가와 일본 전협(全協)에 관계하여 활동하던 인물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비밀결사로 해남(海南)·영암(靈巖)·장흥·강진(康津)·완도·보성(寶城)에서 활동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했다. 관계자는 5백여 명에 달했다. 이처럼 황동윤은 전라남도 지역 소작쟁의 지도, 농촌 조직의 결성 등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36년 1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38년 7월에 만기 출옥하였다. 1939년 3월경 전남 장흥군에서 정준균(鄭俊均) 등이 주도한 비밀결사 ‘ML재건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검거되지 않은 활동가와 석방된 운동가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39년 9월 광주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황동윤 판결문」(1920.12.21.) 완도군지편찬위원회, 완도군지, 완도군, 1992. 지수걸, 「일제하 전남 완도・해남지역의 농민조합운동 연구-‘전남운동협의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역사교육』49, 역사교육연구회,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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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완도군 군외면 황진리 68 |
|---|---|
| 주소 | 전남 완도군 군외면 황진리 68-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동윤 판결문」에서 본적지를 확인하였고, 1915년 지적도와 현재 지번을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황동윤 집터(2023년 촬영)
황동윤 집터(2023년 촬영)
황동윤 집터 전경(2023년 촬영)
황동윤 집터 전경(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