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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종협 생가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당시 건물은 멸실되었고 새로운 가옥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20~30년대 진도지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던 박종협이 태어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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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보향단/진도기독청년회/진도신흥청년회/자각회/진도농민조합 
관련 인물 정경옥/박석현/김인수/조규선/박동인/곽재필/곽재술
관련 내용 박종협(1901~1943)은 전남 진도 출신으로 고향의 서당(書堂) 생도로 있던 1919년 12월 10일 정경옥(鄭景玉)·박석현(朴錫鉉)·김인수(金仁洙) 등과 함께 비밀결사 보향단(補鄕團)을 조직하였다. 보향단은 각처의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모방하여 서당 내에서 격문 백수십매를 작성한 후 동년 12월 30일 진도 읍내에 배포하였다. 또한 1920년 1월 1일을 기해 만세시위운동을 펼 것을 계획하였으나 격문이 발견되어 일경에 붙잡혔다.
이후 그는 진도지방 청년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는데 진도기독청년회 총무를 역임하는 한편 소작인회의 총무로서 1925년 소작쟁의를 주도하였다. 1926년에는 진도신흥청년회(珍島新興靑年會)를 조직하였고 작부취체해방운동(酌婦取締解放運動)에 관여하였다가 1927년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적화당사건(朝鮮赤化黨事件)에 연루되어 1929년 10월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조규선(曺圭先)·박동인(朴東仁)·곽재필(郭在必) 등과 더불어 1933년 1월 진도에서 사회주의 비밀결사 자각회(自覺會)를 조직하여 조사부장을 맡아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토론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자각회가 동년 4월 해산되자 중앙일보(中央日報) 진도지국 지국장을 지냈으며 1934년 4월 조규선·곽재필·곽재술(郭在述) 등과 함께 진도농민조합을 결성하고 교양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진도농민조합은 농민들의 일상생활에 관련한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는 행동강령을 정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1934년 8월 조합원 곽재술의 구타사건으로 인해 진도농민조합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그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1936년 1월 목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박종협 판결문」(1936.03.02.)
진도군지편찬위원회, 『진도군지』상, 진도군지편찬위원회, 2007, 229~300・394쪽.
박찬승, 「근현대 사회변동과 진도 동족마을 주민의 대응-식민지시기 세등리를 중심으로-」, 『지방사와 지방문화』3권 2호, 역사문화학회, 2000
이종범, 「19620・30년대 진도지방의 농촌사정과 농민조합운동」, 『역사학보』109, 역사학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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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 119
주소 전남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교길 35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박종협 판결문」, 「진도적색농민조합사건 검거에 관한 건」 등에서 본적지가 전남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 119번지임을 확인하였다. 1915년 지적도에서 해당 번지를 확인한 결과 박종협의 부친 소유로 나오며, 위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위치를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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