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자은도 소작쟁의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기타 |
| 상태 | 변형 /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선착장의 모습은 남아있다. 암태도와 교량이 만들어져 선착장으로서의 기능은 쇠퇴하였다. |
| 정의 | 1925~26년 자은도 농민들이 소작쟁의를 일으킨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자은소작인회 |
| 관련 인물 | 문재철 |
| 관련 내용 |
신안 자은도에서는 자은청년회 주도로 1924년 1월 자은소작인회가 설립되었다. 자은소작인회는 같은 해 8월 암태도 소작쟁의에서 소작료 4할을 관철시키자 지주들에게 같은 조건을 요구하면서 활동을 본격화했다. 10월 2일 제3회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소작료 4할을 요구하고 지주가 불응하면 불납동맹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지주와 협상하여 소작료는 논 4할, 밭 3할로 정하고 별도로 생산량의 1할을 농업장려비로 두어 지주와 소작인회의 대표가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로 협의하였다. 그러나 1925년 8월에 문재철을 비롯한 지주들은 합의를 파기하고 소작료 5할을 요구하였다. 지주들의 요구에 대해 자은소작인회에서는 1925년 11월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소작료 4할을 승낙한 지주에게는 소작료를 지불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주에 대해서는 소작료 납부를 거부할 것을 결의하였다. 지주들은 소작인들에 대해 가압류를 단행하여 1925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가압류 승인을 받았다. 이를 집행하기 위한 집달리가 24일 자은면에 도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소작인들은 집달리를 쫓아냈다.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끌었던 박복영이 김옥석, 문옥산 등과 자은도에 입도했다. 이들은 집달리 업무를 방해한 문제로 일제 경찰이 출동할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자은소작인회에 알렸다. 실제로 26일 목포경찰서에서 5명의 경찰관이 출동했다가 소작인들에게 포위되어 쫓겨났다. 그러자 목포경찰서에서는 27일 17명의 경찰관을 파견하여 압류를 진행함으로써 소작인들과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전남경찰부에서는 담양, 장성, 나주, 광주 등지에서 100여명의 징발하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비상소집해서 180여명의 경찰관을 1926년 1월 3일 자은도에 급파하였다. 이들은 자은도 남강포에 도착해서 소작인회 간부들을 검거하고 자은도와 암태도 사이의 교통을 차단시켰다.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온 신문기자도 상륙하지 못하게 경비선에 감금한 상태에서 경찰관과 농민 사이에 격투가 일어나 농민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40여 명이 검거되었다. 자은소작인회 간부들이 체포되자 1천여 명의 도민들은 해산하지 않고 경관대의 본부인 자은부두에서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밤 10시 경 대충돌이 벌어져 중경상자를 내고 나서야 해산했다. 경찰은 다음 날 아침에도 시위자를 체포했는데 이날 아침에도 400여 명이 모여들어 겨우 해산시키는 정도였다. 일제 경찰은 1월 5일 체포된 이들을 목포로 이송한 다음에도 자은도에 경찰관 3~40명을 남겨두었고, 11일에도 20여 명을 추가로 파견하여 경계하였다. |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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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무안군 자은면 자은도 일대 |
|---|---|
| 주소 | 전남 신안군 자은면 유각리 53-29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1917년 측도한 1:50,000지도에 선착장 표기가 되어 있어, 현재 지도와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자은도 소작쟁의지-자은부두 선착장(2023년 촬영)
자은도 소작쟁의지-자은부두 선착장(2023년 촬영)
자은도 소작쟁의지-자은부두 선착장 전경(2023년 촬영)
자은도 소작쟁의지-자은부두 선착장 전경(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