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함평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함평전통시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함평5일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
| 정의 | 1920년 3월 26일, 함평읍 장날을 이용하여 조사현, 송대호, 정기연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조사현(曺士鉉)/송대호(宋大浩)/정기연(鄭琪衍)/김용언(金用彦)/최봉길(崔奉吉)/모순기(牟順基)/김준령(金俊玲)/김재문(金在文)/정영조(鄭永祚)/윤태완(尹泰完)/이행록(李行錄) |
| 관련 내용 |
1920년 3·1운동 1주년이 되자,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전남 함평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1920년 3월 26일 함평읍내에 위치한 함평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은 조사현(曺士鉉)·송대호(宋大浩)·정기연(鄭琪衍) 등이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둔 청년들로서 3·1만세시위운동 1주년을 기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1920년 3월 19일 함평공립보통학교 기숙사에서 만남을 갖고 구체적인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함평공립보통학교 졸업식인 3월 26일에 만세시위를 결행할 것을 결정하고,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송대호·정기연·김용언(金用彦) 등은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함평리 최봉길(崔奉吉)과 모순기(牟順基) 집에서 태극기 수십 매를 만들어 기숙사에 숨겨두었다. 1920년 3월 26일 송기호와 정기연은 학생들에게 졸업식이 끝난 후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오후 4시경 졸업식을 마친 김준령(金俊玲), 김재문(金在文), 정영조(鄭永祚) 등은 윤태완(尹泰完), 이행록(李行錄) 등 학생 30여명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조사현 등의 청년들은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이끌었다. 이에 많은 학생·시민들이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헌병과 경찰의 무력 탄압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일본 헌병과 경찰에 의해 10여명의 군중이 부상을 입었고, 조사현·송대호·정기연 등 20여명이 체포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함평공원(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06) 내에 「기미 3·1의거열사기념비」를 세워놓고 있다. |
| 참고 문헌 | 「모순기 판결문」·「김재문 판결문」·「정영조 판결문」에 함평시장(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함평군에서 1920년 3월 26일 만세시위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함평공원 내에 세운 「기미3·1의거열사기념비」를 통해 과거 이곳이 함평시장(장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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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함평군 함평면 기각리 |
|---|---|
| 주소 | 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82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모순기 판결문」·「김재문 판결문」·「정영조 판결문」에 함평시장(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함평군에서 1920년 3월 26일 만세시위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함평공원 내에 세운 「기미3·1의거열사기념비」를 통해 과거 이곳이 함평시장(장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함평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2023년 촬영)
함평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3년 촬영)
함평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3년 촬영)
함평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전경(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