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인행 생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복원 / 현재 후손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생가 뒤쪽에는 묘소도 위치해 있다. |
| 정의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모집과 함평 만세시위운동, 신간회 함평지회 설립을 주도한 이인행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간회 함평지회/대한민국 임시정부 |
| 관련 인물 | 이인행/정기연/조사현/김용언/김준령/모순기/김준부/김기성/김철/기산도/김종택 |
| 관련 내용 |
이인행(李仁行, 1898~1975)은 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에서 부친 이재관과 모친 임향동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조정랑공 삼회재 이돈현의 5대손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적 역량을 갖췄다. 1919년 광무황제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경찰서를 나와 치료를 받던 중 기산도를 만나 국민대회 취지문 작성에 참여하였다. 전라남도 국민대회 특파원에 임명되어 국민대회 취지서를 가지고 함평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정기연·조사현·김용언·김준령·모순기·김준부·김기성 등과 모임을 갖고 국민대회 취지서 전단을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1919년 3월에는 김철·기산도·김종택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 사건으로 1919년 10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5월 함평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함평지회가 결성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당시 함평지역에서 청년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을 이끌던 인사들과 함께 간사에 임명되었고, 초대 상무집행위원에도 선임되었다. |
| 참고 문헌 |
「이인행 판결문」(1920년 5월 5일, 광주지방법원). 『전남일보』, 1979년 2월 19일, 「萬歲六十年」. 함평군사편찬위원회, 『함평군사』 1, 함평군, 2010, 1104~1106·1127~1128쪽. 노기욱, 『삼역 이인행평전』, 전남대학교출판부,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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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
|---|---|
| 주소 | 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42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인행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이인행 생가(2023년 촬영)
이인행 생가 전경(2023년 촬영)
이인행 생가 전경(2023년 촬영)
이인행 묘(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