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목포 송도신사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통치·탄압·수탈기구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송도신사의 대부분 구조물은 해방 이후 철거되었다. 현재 신사로 올라가는 ‘77계단’과 부속건물 1동이 남아있다. |
| 정의 | 1911년 일본인들이 목포에 조성한 송도신사와 송도공원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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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송도는 목포시 동명동 일대에 위치한 곳으로 매립을 통해 육지가 된 작은 섬이다. 원래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송도라고 불려졌다. 이러한 송도는 개항 초기 목포 신시가지 확대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도로가 연결되고 간척이 이루어지면서 섬의 형태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1896년 6월 목포 각국거류지회는 송도에 최초 근대 공원인 송도공원을 지정하였다. 송도신사는 한일병합 이후 1911년 2월, 목포 송도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한일병합 이후 목포의 일본인들은 목포 거류지내 규모를 갖춘 신사를 건립하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웠다. 이에 일본인 유지들의 헌금과 목포거류민단의 발기로 송도신사가 준공된 것이다. 초창기 규모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만 갖춘 수준이었으나 목포의 도시화 발달과정 속에서 점차 확대되어 갔다. 송도신사에서는 일본 천황에 충성하는 신도를 배출하기 위한 각종 제전이 집행되었다. 신년제, 신상제, 천장절 등 13개의 행사가 개최되었고, 1930년대 이후 전시체제로 전환되면서 전쟁 관련 제전 및 정치적 행사가 행해졌다. 조선인 지원병 입소식, 징병 기념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가 송도신사 경내에서 행해진 것이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면서 송도신사와 관련된 건물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는 건물 1동(종무소)과 계단, 돌기둥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
| 참고 문헌 |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목포시사』 1, 목포시, 2017, 522~523·612~613쪽. 양은정, 「일제강점기 목포 송도신사의 건립과 특징」, 목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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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목포부 |
|---|---|
| 주소 | 전남 목포시 수강로 12번길 5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일제강점기 목포 송도신사의 건립과 특징」(양은정, 목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에 관련 사진과 내용이 실려 있다. 「목포지도」(1917)와 「목포시가지도(연도미상)를 통해서 위치를 확인하였다. |














목포 송도신사 터(2023년 촬영)
목포 송도신사 터(2023년 촬영)
목포 송도신사 터(2023년 촬영)
목포 송도신사 입구 계단(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