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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4·8만세시위운동 준비지 – 박상렬 미곡상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과거의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19년 4월 8일 목포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모여서 만세시위를 준비·계획했던 박상렬의 미곡상이 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목포상업학교/양동교회/영흥학교/정명여학교 
관련 인물 남궁혁(南宮赫)/박상렬(朴相烈)/오도근(吳道根)/김영주(金永周)/권영례(權寧禮)/오재복(吳在福)/이금득(李今得)/배치문(裵致文)/박상술(朴相述)/박상오(朴相五)/서상봉(徐相鳳)/곽우영(郭宇英)/서화일(徐化一)/박여성(朴汝成)/박복영(朴福永)/강석봉(姜錫奉)/양병진(楊炳震)/박성칠(朴性七)
관련 내용 목포에서의 만세시위는 1919년 2월부터 준비되었다. 그것은 일본 유학생이던 남궁혁을 통해서였다. 1919년 2월 고향인 목포로 돌아 온 남궁혁은 목포상업학교 출신의 박상렬을 만나 일본에서의 2·8독립선언과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등 세계정세 변화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목포에서도 본격적으로 만세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남궁혁(南宮赫)·박상렬(朴相烈)을 비롯하여 오도근(吳道根)·김영주(金永周)·권영례(權寧禮)·오재복(吳在福)·이금득(李今得)·배치문(裵致文)·박상술(朴相述)·박상오(朴相五) 등의 학생·청년들이 박상렬의 미곡상에 모여 만세시위의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 등을 논의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기독교계 인사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상봉(徐相鳳)·곽우영(郭宇英)·서화일(徐化一)·박여성(朴汝成)·박복영(朴福永)·강석봉(姜錫奉)·양병진(楊炳震) 등 양동교회 인사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한 것이다.
남궁혁과 박상렬 등은 기독교계와 긴밀히 연락하면서 만세시위를 추진해 나갔다. 박상렬은 부친 박성칠(朴性七)의 회사에서 등사판을 가져와 태극기와 경고문 등을 제작하였다. 제작한 인쇄물은 박상렬의 미곡상점 안에 쌀가마로 위장하여 보관되었다. 또한 거사일을 4월 8일로 정하고, 인원동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가졌다. 그 결과 기독교계에서는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 학생 동원을 담당했으며, 오재복·이금득·박상술 등은 보통학교를, 박상렬은 상업학교 학생 동원을 책임졌다.
1919년 4월 8일 오전 10시, 목포시내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박상렬은 상업학교 학생 150여 명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민과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대형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경찰과 헌병을 동원하여 무력진압에 나섰다. 그 결과 남궁혁·박상렬·박상오·박상술·배치문·곽우영 등 80여명이 체포되었다.
참고 문헌 「박상렬 판결문」(1919년 7월 19일, 대구복심법원).
박상렬, 「午前 3時의 막걸리 한되 : 一九一九年 三月<木浦>」, 『신동아』 7, 동아일보사, 1965, 98~100쪽.
목포개항백년사편찬위원회, 『목포개항 백년사』, 목포신문사, 1997, 203~206쪽.
고석규, 『근대도시 목포의 역사·공간·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311쪽.
김진호·박이준·박철규, 『국내 3·1운동』 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213~214쪽.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목포시사』 1, 목포시, 2017, 403~404쪽.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목포시, 『1919 남도, 대한독립만세 : 2019 특별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9, 284~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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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목포부 창평정 14
주소 전남 목포시 창평동 15-1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박상렬 판결문」과 박상렬의 회고(「午前 3時의 막걸리 한되 : 一九一九年 三月<木浦>」)에 주소가 기록되어 있어 현지조사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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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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