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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우식 순절지 - 오강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복원 / 1946년 복원되어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정의 최익현의 제자로, 스승인 최익현과 함께 태인의병에서 활동했던 조우식이 1937년 (음) 3월 27일 자결 순국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태인의병 
관련 인물 송병선/기우만/이건창/최익현/조영선/정대현
관련 내용 조우식(趙愚植, 1888~1937)은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진식(進植)이었으나 우식(愚植)으로 바꾸었고, 자 역시 처음에는 사용(士勇)이었으나 종안(宗顔)으로 변경하였다. 호는 성암(誠菴)으로 최익현이 지어준 것이다.
어려서부터 숙부의 엄격한 지도를 받아 학문을 익혔다. 기호학파인 송병선과 노사학파의 기우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건창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는 등 학문수양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다가 1900년 면암 최익현의 제자로 입문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1906년 최익현이 태인의병을 일으키자 함께 참여하였다. 정읍·순창·곡성 등지에서 무기와 군자금 조달에 힘썼다. 1906년 6월 14일 최익현이 순창에서 관군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함께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1908년 최익현 문집 간행의 교감 및 재정을 맡았다. 1909년에는 스승인 최익현을 기리기 위해 조영선 등과 함께 ‘오강사(梧岡祠)’를 세웠다. 1921년 일제 경찰이 최익현의 영정이 압수하고 사우를 훼철하자, 강력히 항의하여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37년 또다시 일제 경찰이 사우를 폐쇄하자, 일제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절명사 2편을 남기고 오강사 옆의 잣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오강사는 해방 후인 1946년 다시 중건되었으며, 1954년 조우식을 추배하였고, 1956년에는 조영선을 추배하였다. 그리고 1969년 다시 중수가 이루어졌다. 1993년에는 정대현을 추배하였다. 사우 내에는 최익현과 조우식의 영정 및 4위의 위패가 있으며, 재실로 일성당과 외삼문인 충의문이 있다.
참고 문헌 송상도, 『기려수필』, 102쪽.
황현, 『매천야록』, 38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1, 1972, 380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2, 1970, 74·102쪽.
곡성군, 『곡성군사』 1, 곡성군청, 2018, 266~268쪽.
곡성군, 『곡성군사』 2, 곡성군청, 2018, 218~219쪽·438~439쪽.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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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주소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3길 16-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1946년 복원되어 있어 현장조사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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