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민호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과거의 모습은 없어지고, 새롭게 신축된 상태이다. |
| 정의 | 김도연·김양수 등과 함께 『삼일신보』 발간에 참여하고, 국내에서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했던 서민호가 살았던 집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삼일신보/대한민국임시정부/사립송명학교/남선무역주식회사/조선어학회/ |
| 관련 인물 | 송진우/김성수/장덕수/김도연/김양수/윤치영/이철원/이동제/고명우 |
| 관련 내용 |
서민호(徐珉濠, 1903-1974)는 1903년 4월 17일 전남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 죽산마을에서 부친 서화일(徐和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성고보 재학 중 3·1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반도목탁」지 사건으로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생활에 매진하였다. 1922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경학부에 입학했으며, 1925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 웨슬리안대학과 뉴욕 콜롬비아 대학원 정치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특히 콜롬비아 대학원 재학 시절, 장덕수·김도연·김양수 등과 함께 『삼일신보』 소식지 발간에 참여하였고, 유학생들 간의 통합에 힘썼다. 이로 인해 일제의 감시를 받기도 하였다. 1929년 귀국하여 사업과 교육활동에 노력을 기울였다. 농민들을 위해 벌교에 남선무역주식회사를 설립·운영하였으며, 1935년에는 송명학교를 인수하여 운영을 맡았다. 1936년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 촉진을 위한 후원조직에 참여하였다. 김도연·김양수와 함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자금조달의 책임을 맡았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4개월간의 옥고를 치루고 1944년 출감하였다. |
| 참고 문헌 |
서민호, 『월파 서민호 회고록:시대와 맞섰던 한 평생』, 월파 서민호선생기념사업회, 2013, 12-55·185쪽. 오수열, 「월파 서민호의 생애와 조선대학 설립에 끼친 공적」, 『호남정치학회보』 5, 호남정치학회, 1993, 141-16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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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 314-1 |
|---|---|
| 주소 | 전남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 314-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월파 서민호 회고록』에서 관련 사실과 생가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