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지-순천읍교회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순천기독면려회가 결성되었던 순천읍 교회는 현재 순천중앙교회로 변해있다. |
| 정의 | 1920년대 순천지역의 계몽활동과 인권문제를 이끈 순천기독면려청년회가 결성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변요한(John F. Preston)/정태인/김영진 |
| 관련 내용 |
순천기독면려청년회는 1920년대 초 순천지역 청년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조직이다. 순천지역의 선교와 계몽활동에 앞장서고 일제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맹렬히 저항하였다. 순천기독면려청년회는 1918년 10월 15일 순천읍 교회에서 결성되었다. 변요한(John F. Preston)·정태인·김영진 등이 결성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순천지역의 영향력 있는 목사로,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순천기독면려청년회는 회장·부회장·총무와 함께 덕육부·지육부·체육부를 두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지역 현안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매산학교 강당에서 ‘소작료 4할’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보통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아동을 위한 강습소 설치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재외동포를 위문하거나 수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에도 힘썼다. 또한 순천지역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일제 경찰의 고문과 구타 등 인권유린 행태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순천기독면려청년회가 결성된 순천읍 교회는 1907년 4월 조상학이 금곡동의 향교 부근 양사재(養士齋)를 빌려 예배당으로 사용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08년에는 양사재에서 벗어나 서문 밖 5칸짜리 집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했으며, 1910년 3월에는 매곡동의 목조건물을 신축하여 성장을 거듭해 나갈 수 있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1년 5월 11일, 「勉勵靑年會 定期會」. 『동아일보』, 1921년 10월 26일, 「勉勵靑年會 紀念」. 『동아일보』, 1923년 10월 19일, 「順天基督靑年 總會」. 『동아일보』, 1923년 12월 12일, 「靑年 其他 集會」. 『동아일보』, 1924년 2월 27일, 「十二團體 決意, 順天鄕校에 勸告文」. 『동아일보』, 1924년 3월 2일, 「順天掌議會에 十二團體 交涉 顚末」. 『동아일보』, 1924년 3월 30일, 「順天 十一團體 警察 聲討大會」. 『순천읍교회 당회록』, 1918. 평신도회 지육부, 『순천중앙교회약사』, 1971, 23-24쪽. 순천시사편찬위원회, 『순천시사』(정치·사회), 순천시, 1997, 607-610쪽. 임송자, 「순천기독면려청년회 활동과 순천청년회」, 『남도문화연구』 37,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남도문화연구소, 2019, 169-19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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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순천군 순천면 매곡리 |
|---|---|
| 주소 | 전남 순천 서문성터길 2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순천읍교회 당회록』과 「순천기독면려청년회 활동과 순천청년회」 논문 등을 통해 관련 사실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지(2022년 촬영)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지(2022년 촬영)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지 전경(2022년 촬영)
순천기독면려청년회 결성지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