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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영완 집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가옥
상태 원형보존 / 입구에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대문 우측에 광복회에서 제공한 ‘독립유공자의 집’ 안내판이 붙어있다.
정의 조선학생동지회의 전라도책임자로 활동했던 고영완이 살던 집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조선학생동지회 
관련 인물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原)/윤주연(尹柱淵)/고언주/고재극/고영남
관련 내용 고영완(高永完, 1914-1991)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제주고씨 장흥백파 고복림(高福林)의 26세손이자,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16세손이다. 1931년 서울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센슈대학(專修大學)에서 유학하였다.
1939년 12월,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하였다. 조선학생동지회는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原)·윤주연(尹柱淵) 등이 조직한 항일결사조직이다. 이들은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투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도쿄 유학생 등 해외 유학생과 연락을 취하고,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까지 남한산성, 냉천동 약수터, 연희전문학교 뒷산, 벽제관 등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동지규합과 조직 확대에 힘썼다. 이때 고영완은 전라도책임자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41년 7월, 하부조직인 원산상업학교의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계획은 실패하게 되었다. 고영완은 1941년 9월 여동생 고영남과 함께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1943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고영완이 살던 집은 고영완의 증조부 고언주가 1852년에 건립하고 조부 고재극이 증축한 것이다. 본래 정화사라는 암자 자리였다고 한다. 이 집은 일자형 겹집으로 된 목조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참고 문헌 고산지, 『계곡의 안개처럼 살다: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무계 고영완 일대기』, 배문사, 2017, 12-36·66-67·465-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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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 89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 8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계곡의 안개처럼 살다: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무계 고영완 일대기』에 관련 사실과 가옥에 대한 위치 설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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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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