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율 순국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복원 / 김율 순국지인 박용철 생가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시멘트 기와로 개량했다가 최근에 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였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
| 정의 | 1906년 형 김태원과 함께 호남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김율이 순국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호남창의맹소 |
| 관련 인물 | 김태원, 기삼연, 김용구, 이석용, 전해산, 심남일 |
| 관련 내용 |
김율(1882~1908)은 1906년 10월 5일 형 김태원과 함께 나주에서 봉기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기삼연의 문하생으로, 1907년 9월 기삼연을 중심으로 김용구ㆍ김태원ㆍ이석용ㆍ전해산ㆍ심남일 등이 연합하여 결성한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에 가담하여 주력으로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김태원과 함께 무장ㆍ법성포ㆍ고창ㆍ장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특히 1907년 10월 29일에는 고창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고, 같은 해 12월 7일에는 법성포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노획하여 무장을 강화하고, 그곳 사창을 점령하여 저장되어 있던 양곡을 압수하여 군량미로 충당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8년 1월 3일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평 순사주재소를 공격 점령하여 무기와 금품을 노획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월 22일에도 그는 기삼연 의병장과 합동하여 4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재차 함평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2월 2일 기삼연 의병장이 붙잡혀 순국한 뒤, 그는 김태원과 함께 기삼연 의진의 주력부대를 지휘하며 광주 일원 곳곳에서 일본군을 유격전술로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는데, 특히 창평에서 일본 기병대를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3월 30일 그는 광산군 송정읍에서 붙잡혀 4월 25일 전사한 형 김태원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도중 탈출을 기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전라남도 경찰부장 폭도 상세에 관한 보고」, 『폭도에 관한 편책』, 1908년 9월 29일 「폭도 김율 체포 압송의 건」, 『폭도에 관한 편책』, 1908년 3월 29일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장소마케팅연구센터, 『광주의 오월을 걷자』, 2016, 17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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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
|---|---|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소촌동 363-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광주의 오월을 걷자』에 시인 박용철의 생가 일대에서 순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다만 추가적인 관련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김율 순국지(2022년 촬영)
김율 순국지(2022년 촬영)
김율 순국지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