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황학수 집터(송학면 무도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당시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고, 무도길 16에는 새 주택이 신축되어 있다. |
| 정의 |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황학수의 본적지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대한민국임시정부, 서로군정서, 신민부, 한국독립군, 한국독립당 |
| 관련 인물 | 황학수(黃學秀), 황두연(黃斗淵), 정희섭(丁喜燮), 김학소(金學韶), 이상룡(李相龍), 김구(金九), 조소앙(趙素昻) |
| 관련 내용 |
황학수(1877~1953)의 호는 몽호(夢呼)로, 1879년 6월 10일 서울 화동(花洞)에서 부친 황두연과 모친 홍씨 사이에서 3남으로 출생하였다. 황학수의 부친은 개항 이후 혼란한 시기를 피해 가족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고자 하였으며, 황학수가 6세 때인 1884년 어머니와 함께 단양으로 내려와 거주하였다. 학행과 범절이 뛰어난 허증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1894년 16세가 되던 해에 19세 된 정희섭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 무렵 동학농민군이 봉기하면서 사회가 혼란해지자 황학수의 아버지는 서울에 남아 있던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낙향하였다. 황학수는 제천에서도 동학농민군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혈기 왕성함으로 동학당에 가담하였으나, 아버지와 장인이 만류하면서 탈당하였다. 그러던 중 1895년 대한제국무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주하였다. 황학수는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년 6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무관학교를 제 1회 졸업생으로 졸업하면서 대한제국 육군 참위(9품)로 임관되었다. 황학수는 이후 7년여 동안 육군 참위로 복역하였으며,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제천으로 낙향하였다. 1909년 6월 부명학교(溥明學校)를 설립하고 인재육성에 전념하였다. 무관학교 동기인 김학소를 만나 만주 일대 독립운동가들의 상황과 독립군 양성 소식을 전해 듣고 외국으로 망명을 계획하다 1919년 3·1운동 발발을 계기로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곧이어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한다. 황학수는 임시정부에서 군사 간부를 양성하려는 계획에 따라 군무부 소속 교관이 되어 학도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였다. 군무부에서의 활동과 함께 임시정부의 국내조사원(충청북도 제천)과 임시의정원 의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이후 김학소를 만나기 위해 만주로 향하던 중 북경에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선에 반대하던 세력들이 주도한 군사통일회(1920년 9월 발족)에 참여하여 군사위원에 선임되었다. 1921년 5월 길림성으로 이동하여 이상룡과 함께 서로군정서를 재조직하는데 앞장섰으며, 참모장과 군무부장을 겸임하며 서로군정서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내부적인 문제로 서로군정서를 떠난 황학수는 다시 북만 지역으로 향하였다. 1926년 김학소를 만나면서 신민부에서 주로 군사 분야를 담당하며 활동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이 창당되면서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만주사변 직후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여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과 연합하여 대순자령(大甸子嶺) 전투(1933년 6월)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1938년 다시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되고, 병력 모집 및 군사 교육 등 한국광복군 창설에 필요한 준비작업을 담당하였다. 1940년 5월 김구의 한국국민당, 조소앙의 한국독립당, 만주세력의 조선혁명당이 합당하여 한국독립당이 창당되었다. 이때 황학수는 중앙감찰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활약하다가 중경에서 해방을 맞아 1945년 12월 1일 환국하였다. 환국 이후에도 임시의정원을 계승한 국민의회에서 정치분과 위원장과 한국독립당의 중앙감찰위원장으로 활동을 계속하는 하였으나, 미군정 하에서 제대로 뜻을 펴기 어려웠다. 이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제천군 금성면 중전리로 피난하였다가 1953년 3월 12일 생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敍任及辭令」, 1910년 1월 23일,『대한제국관보』. 「황학수 제적부」 한시준, 「몽호 황학수의 생애와 독립운동」,『사학지』, 단국사학회, 1998, 537~539쪽. 박걸순, 「단양의 독립운동가 유적 현황과 활용 방안」,『중원문화연구』16・17합본,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11, 126~1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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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제천군 송학면 무도리 218 |
|---|---|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무도리 218 (무도길 1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학수의 제적등본에서 본적을 확인하였으며 한시준의 황학수 연구서에서도 무도리에 대한 언급이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