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최욱영 생가마을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최욱영이 거주하였던 곳의 정확한 지번은 확인되지 않으나, 마을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 가운데 최욱영 관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 |
| 정의 | 이강년 의진의 군사장으로 활동하던 최욱영이 태어난 마을.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이강년 의진 |
| 관련 인물 | 최욱영(崔旭永), 민긍호(閔肯鎬), 이강년(李康秊), 김재성(金在聖, 金在性), 권태준(權泰俊), 류승만(柳承晩), 이중화(李重和), 김병연(金秉淵), 이인화(李仁和), 안교봉(安敎奉), 이식재(李湜宰) |
| 관련 내용 |
최욱영(1854~1919)은 1854년 10월 7일 제천군 제천면 고명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송산(松山), 호는 청계(淸溪)이다. 최욱영의 묘비에는 강직한 성품으로 장년기에 이르러 특출한 문재와 탁월한 경륜을 쌓아 고향의 후학들에게 충의의 도를 가르쳤다고 하고 있다.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를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원주의병대장 민긍호로부터 총기를 받아 원주 신림(神林) 안강리(安康里)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 후 제천・영월・단양 등 10여 개의 군에서 적과 접전을 벌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횡성에서 교전 중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유탄에 적중되어 대퇴부 상단에 총상을 입었다. 1907년 9월 이강년 의진에 입대하여 군사장(軍師將)에 임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1907년 12월 부대를 이끌고 제천 부근에 있다가 일본군에게 기습당하자 단양으로 진을 옮겼다. 그러던 중 1908년 5월 이강년이 피체되자 문경으로 이주하여 이름을 권태준(權泰俊)이라 변성명하여 은신하였다. 1913년 2월 중순 의병 김재성으로부터 고종황제의 밀서(辭令書)를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군자금을 모금할 것을 계획하고, 류승만, 이중화, 김병연, 이인화 등의 동지와 규합하여 국권회복에 앞장섰다. 1913년 8월 동지들과 함께 화승총 19자루, 군도 2개, 철퇴 1개 등 무기와 검은 양복 10벌을 확보하여 각지를 돌아다니며 군자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9월 문경에서 의병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인 민단조합(民團組合)에 참여하였다. 민단조합의 주모자로 체포된 이들은 대체로 이강년의 의진에서 활동하였으며, 척사적 복벽운동 계열의 마지막 모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욱영은 이해 민단조합의 주모자 중 한 사람인 이강년의 조카 이식재와 함께 이 해 12월 제천 근북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200원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4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부하 안교봉 등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1915년 6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강도교사죄목으로 징역 15년형을 받았으며, 7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9월 8일 오랜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폭괴이강년의 군사장 징역십오년에 불복공소, 국권회복한다고 강도질」,『매일신보』, 1915년 5월 13일. 「안교봉 외 1인 판결문」(1915년, 공주지방법원). 경상북도 경찰부 원, 「併合以降ニ於ケル本道關係主要犯罪(第七章)」,『고등경찰요사』, 259~260쪽, 1934.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388쪽. 국가보훈처,『독립유공자공훈록1』, 1986, 9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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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면 고명리 |
|---|---|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고명리 249-5(청풍호로 62길 8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최욱영의 활동은 판결문 및『고등경찰요사』,『매일신보』등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최욱영이 살던 곳은 기록마다 달리 나타난다.『독립유공자공훈록』에는 본적을 제천이라 하였으나 본문에 경북 문경 출신이라 하고, 판결문과『매일신보』에는 경상북도 문경군 영순면 백포리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문경은 이강년 체포 이후 최욱영이 이주한 곳으로 확인되며, 출생하면서 이강년 의진에 있을 때까지는 제천 고명리에서 거주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