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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중봉 생가마을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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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가옥
상태 이중봉이 거주하였던 곳의 정확한 주소는 알 수 없으나 도화리 마을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마을자랑비에 이중봉과 관련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마을 주민 가운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전무하다.
정의 이강년 의진에서 우군장으로 활약한 이중봉이 출생하여 살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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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양재건(梁在建), 이해수(李海秀), 이강년(李康秊), 신태원(申泰元), 이만원(李萬源), 권용일(權用佾), 이달(李達)
관련 내용 이중봉(생몰년 미상)은 양반 출신으로 1871년 무렵 청풍군 도화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가 퇴위 당하고,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운동이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자, 그는 양재건, 이해수와 함께 전북 순창에서 거병하였다.
1907년 8월 9일(음력 7월 1일) 이강년이 도창의대장에 임명되면서 의병 조직을 편제할 때 이중봉은 우군(右軍)이 되어 본격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1907년 9월 15일(음력 8월 8일) 경북 문경 적성에서 후군장 신태원의 부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접전을 벌였는데, 이 때 이중봉이 적의 탄환에 맞아 동면 가리점으로 후송되었다. 그러나 곧 회복되어 그해 10월 12일(음력 9월 6일) 총독장 이만원, 선봉장 권용일과 함께 수백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연풍에 주둔한 적을 공격하여 4명을 사살하고 3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그는 이강년 의진에서 의병 초모사업과 정탐활동을 담당하면서 의병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07년 12월 16일(음력 11월 12일) 복상골 전투에서 일본수비대의 기습을 받아 3시간 여 동안 격전을 치르다 총군 이달 등 10여 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혀 충주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이중봉은 유배형이 확정되었으나 판결한지 세 달이 지나도록 유배지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과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주경찰서장에게 조속한 형 집행을 바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중봉의 말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사실이 없으며, 「운강선생창의일록」에 사면받고 고향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였다는 기록정도만 있다.
이중봉은 이강년이 체포되어 수비대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 전국 각지 의병 중에 믿을만한 자로 당시 수감중이었던 이중봉만 있다고 할 정도로 이강년 의진에서 핵심인물이었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폭괴체포」,『황성신문』, 1907년 12월 26일.
「警秘發 第789號; 召募大將 李重鳳의 진술 통보 件」, 1908년 6월 5일,『통감부문서』2.
「警秘發第798-1號; 수감 중인 忠州 지방의 匪徒 李重鳳 및 姜永學에 관한 一件 서류 송부 件」, 1908년 6월 8일,『통감부문서』2.
「丁未倭亂倡義錄」,『창작과 비평』12-4, 1977.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281쪽; 295쪽; 300쪽; 315~31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 1984, 96쪽; 226쪽; 234쪽; 241쪽; 245쪽; 254쪽; 256~257쪽; 296쪽.
국사편찬위원회, 「四. 隆熙 二年(一九○八·明治 四一); (三) 七月, 忠淸道; 警部 警務局長 앞」,『한국독립운동사자료』11, 1982.
박정수・강순희 편, 구완회 역,『국역 창의사실기』, 다운샘, 2014, 94~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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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청풍군 도화리
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운강선생창의일록」에서 이강년 의진의 우군장 이중봉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중봉의 생가는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 청풍군 도화리로만 기록되어 있으며 정확한 주소지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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