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매곡면 의병 활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노천리 일대 의병 활동지에는 매곡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유전리 일대 활동지에는 마을회관이 위치하고 있으나 당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1909년 4~5월 박타관 의진이 의병 활동을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박타관 의진 |
| 관련 인물 | 박타관(朴他官), 곽이용(郭伊用) |
| 관련 내용 |
박타관(?~1909) 의진은 3월 21일 황간군 오곡면 대로촌(大路村)에서 군수품을 모금하고 임태현(林泰鉉)을 살해하였다. 대로촌이 지금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매곡초등학교 일대로 비정된다. 박타관 등 4명은 4월 16일 경북 김산에서 영동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들은 영동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던 중 5월 11일 유치장을 파괴하고 탈주에 성공하였다. 이후 오곡면 오곡리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출동한 일경의 총격을 받고 박타관은 전사하고 부하 곽이용 부상을 입었다. 오곡리 지명은 유전리로 변했다. 노천리와 유전리는 직선거리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앞선 3월 4일 20여명의 의병이 황간군 상촌면 상하물리에 출현하여 금품을 빼앗고 주민 김달희(金達熙)를 살해하였다. 일경이 영동과 황간 등 두 지역에서 동시 출동했고, 의병과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3월 14일 오후 7시에 9명의 의병이 황간군 서면 서송원에 나타났다. 의병들은 동민들이 자신들을 체포하려 하자 화승총과 권총을 발사하고 마을가옥 70호 가운데 39호를 불태웠다. 이것은 의병 활동 방해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시 일경이 출동하였으나, 의병들이 마을에서 퇴각한 뒤라 조우하지는 않았다. 3월 4일, 12일의 의병 출현도 박타관 의진의 활동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 참고 문헌 |
「박타관 판결문」(1909년 6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청주지부). 「暴徒 偵察에 關한 件 報告」,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13, 1984. 「暴徒 來襲에 關한 件 報告의 件」,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13, 1984. 「暴徒 逮捕에 關한 件」,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14, 1985. 「逃走 暴徒 銃殺 及 逮捕에 關한 件」,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14, 1985. 조선총독부, 「영동」,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3, 1970, 201·203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황간군 오곡면 노천리 |
|---|---|
| 주소 |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53-1(민주지산로 3609)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지명 총람』3은 ‘매곡면 노천리는 본래 오곡면 지역으로 중로천리, 내동, 대로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노천리가 되었다’고 서술하였다.『한국지명총람』3은 오곡리에 대해 ‘내오곡리, 의오곡리, 대로천리 일부와 매곡면 곤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유전리(楡田里)라 하였다’고 적었다.『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를 보면 박타관 의진이 활동 한 노천리에 면사무소와 경찰서가 그려져 있고, 큰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