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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권동진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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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권동진 집터는 멸실되었으며, 정확한 집터 주소도 확인할 수 없다. 권동진의 묘는 196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전되었으며, 선영의 묘소도 이장되었다.
정의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었던 권동진이 태어나고 묘소가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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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권동진(權東鎭)
관련 내용 권동진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천도교인이다. 한말(韓末)에 함안군수와 육군참령(陸軍參領)을 역임하였고, 그 후 개화당에 들어가 혁신운동을 전개했으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일본으로 망명하여 천도교에 입교, 도사(道師)가 되었다. 귀국 후 1919년 2월 상순에 최남선(崔南善) 및 최린(崔麟)과 만나 3·1운동을 논의하고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손병희·오세창과 함께 천도교인의 대표로서 2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당시 천도교 기도회의 종료보고와 국장을 참배하기 위하여 상경한 천도교 도사 임예환(林禮煥)·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권병덕(權秉德)·나용환(羅龍煥)·이종훈(李鍾勳)·홍병기(洪秉箕) 및 교인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만세운동계획을 알리고, 민족대표로서 같이 서명할 것에 동의를 구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 태화관(泰華館)에서 민족대표단의 1인으로 참여하여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만세삼창을 외치고, 일본경찰에 의하여 경시청총감부(警視廳總監部)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신간회(新幹會)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지속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참고 문헌 박걸순, 『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2, 351~359쪽.
장석흥, 「권동진의 생애와 민족운동」, 『한국학논총』 30,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8, 6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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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북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 안심마을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아성안심길 45-5(아성리 504-7) 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권동진의 생애와 민족운동」 연구논문에 따르면 권동진의 집터가 안심마을에 있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또한 김영호(2021년 조사당시 90세, 안심마을 거주)도 권동진의 집터가 안심마을에 있었음을 증언하였다. 토지부(괴산군)에서 권동진 명의의 산이 ‘아성리 산36’에 있었음도 확인 된다. 더불어 김영황(2021년 조사 당시 64세, 전 소수면 주민자치위원장)에 따르면, 권동진의 묘는 김영황의 선대묘 위쪽에 있었다. 권동진의 묘는 196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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