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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남궁억 묘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묘소
상태 원형보존 / 묘역이 정비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그의 장남 남궁염 묘가 아래쪽에 같이 조성되어 있다.
정의 한말 애국계몽운동과 1920년대 모곡학교 설립 등 문화운동을 전개한 남궁억의 묘가 있는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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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관련 내용 1884년에 영어학교인 동문학(同文學)을 수료하고 서울 총해관(總海關)의 견습생으로 있다가 1886년에 내부 주사(主事)가 되고, 1887년에 전권대신 조민희(趙民熙)의 수행서기관으로 영국·러시아·독일의 순방 길에 올라 홍콩까지 갔으나 청국정부의 간섭과 방해로 2년간 홍콩에 체재하다가 소환되어 돌아왔다.
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이후에는 관직을 사임하고, 1896년 7월 서재필(徐載弼)·이상재(李商在) 등과 함께 독립협회(獨立協會)를 창립하여 중앙위원·서기·사법위원·평의원 등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위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독립협회 기관지인 「대조선독립협회회보(大朝鮮獨立協會會報)」의 발행에도 참가하였다. 1898년 9월 5일에는 나수연(羅壽淵)·유근(柳瑾) 등과 함께 「황성신문(皇城新聞)」을 창간하여 그 사장이 되어 국민을 계몽하고 독립협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1906년 2월에 남궁 억을 양양군수(襄陽郡守)에 다시 임명했으므로 이에 부임하여 선정을 하면서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1907년 7월 양양의 동헌(東軒) 뒷산에 현산학교(峴山學校)를 설립하여 구국교육을 실시하였다.
1907년 11월에는 권동진(權東鎭), 여병현(呂炳鉉), 유근(柳瑾), 이우영(李宇榮), 오세창(吳世昌), 윤효정(尹孝定), 장지연(張志淵), 정운복(鄭雲復), 홍필주(洪弼周) 등 동지들과 함께 대한협회(大韓協會)를 창립하고 그 회장이 되어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건강이 악화되었으므로 친지들의 권고에 따라 선조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洪川)군 서(西)면 모곡(牟谷)리로 낙향하여 1919년 9월에 모곡학교(牟谷學校)를 설립하였다. 그는 모곡학교에 무궁화 묘포(苗圃)를 만들어 전국에 한국의 나라꽃인 무궁화 보급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저작에도 힘을 써서 1924년에 「동사략(東史略)」, 1929년에 「조선이야기」(5책)라는 국사책을 저술하였다.
1933년 11월 기독교 독립운동의 비밀결사인 십자당(十字黨)을 조직해 둔 것이 발각되어 일제에게 붙잡혀 8개월간 투옥되었다. 그러나 일제에게 받은 고문의 여독으로 출옥후에는 병고에 시달리다가 1939년 순국하였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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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주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산94-4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남궁억 묘비석이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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