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화벽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옛 건물은 사리지고 터만 남아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양양 3.1운동을 이끌었던 조화벽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양양감리교회, 정명학원 |
| 관련 인물 | 조영순, 권애라, 김필선, 유우석 |
| 관련 내용 |
조화벽은 양양군내의 감리교회에 많은 청년을 포섭하여 활발히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영순(趙英淳) 전도사의 딸이다. 전국적으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개성 호수돈여학교(開城好壽敦女學校) 학생으로서 선배인 권애라(權愛羅) 등 수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나누어 준 뒤, 헌병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조화벽은 1919년 3월 말경 대포항을 거쳐 양양으로 돌아왔다. 이때 가방안의 버선 속에 독립선언서를 숨겨가지고 와 부친 조영순이 전도사로 있던 양양감리교회 청년 김필선에게 전달하여 양양 3.1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후 1925년 4월 18일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우석(柳愚錫; 柳寬順의 오빠)과 결혼하였는데,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고,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寬福)과 관석(寬錫)을 양육하였다. 1932년 양양으로 돌아와 양양감리교회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
| 참고 문헌 |
『최인식 판결문』(1919.5.31.) 「양양 정명학원 졸업식」, 『매일신보』, 1939년 3월 21일 「각 학교졸업식 양양정명학원」, 『매일신보』, 1939년 4월 1일. 광복회강원도지부, 『강원여성항일독립운동사』, 2008, 54~55쪽 한국여성독립운동사연구소, 『강원여성독립운동』, 도서출판 정언, 2013, 55~8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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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상왕도리 116 |
|---|---|
| 주소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상왕도리 11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화벽은 양양군내의 감리교회에 많은 청년을 포섭하여 활발히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영순(趙英淳) 전도사의 딸이다. 전국적으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개성 호수돈여학교(開城好壽敦女學校) 학생으로서 선배인 권애라(權愛羅) 등 수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나누어 준 뒤, 헌병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조화벽은 1919년 3월 말경 대포항을 거쳐 양양으로 돌아왔다. 이때 가방안의 버선 속에 독립선언서를 숨겨가지고 와 부친 조영순이 전도사로 있던 양양감리교회 청년 김필선에게 전달하여 양양 3.1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후 1925년 4월 18일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우석(柳愚錫; 柳寬順의 오빠)과 결혼하였는데,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고,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寬福)과 관석(寬錫)을 양육하였다. 1932년 양양으로 돌아와 양양감리교회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














조화벽 생가 터(2021년 촬영)
조화벽 생가 터(2021년 촬영)
조화벽 생가 터 원경(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