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수지면사무소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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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종류 | 거리 |
상태 | 옛 수지면사무소는 현재 용인서부경찰서 수지지구대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
정의 | 수지의 고기리에서 시작한 시위대가 동막리, 동천리, 풍덕천리를 지나며 연합하여 수지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장소이다.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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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
관련 인물 | 안종각, 최우돌, 이덕균 |
관련 내용 |
용인 수지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오전 8시경 안종각(安鍾珏, 1888~1919)과 이덕균(李德均, 1879~1955)의 주도로 시작되어 수지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들은 고기리 마을공터에서 출발해 아랫마을 동천리로 거쳐 동막골, 하손곡 등의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합세한 뒤 수지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했다. 고기동 구장 이덕균의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3월 29일 오전 11시 반경 고기리와 동천리의 주민 400여 명이 당시 수지면사무소였던 이곳으로 행진해 와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30일 시위대는 기세를 몰아 구성(당시 읍삼면)의 일본인 밀집 주거지인 읍삼면 마북리(구성면사무소)로 행진하고 김량장의 용인군청 방면으로 계속 진출하려 했다. 헌병이 해산명령을 해도 응하지 않던 시위대는 일본군의 총격으로 2명이 사살되었고, 오후 2시경에 이르러 해산하였다. |
참고 문헌 |
「內秘補360:秘第214號 소요에 관한 보고」(1919.3.31.) 「독립운동에 관한건(제32보)」(1919.3.31.) 「이덕균 판결문」(1919.05.23.) 「이덕균 감시대상 인물카드」 「수원군 지형도」(1914년 일본 육지측량부 측량, 1937년 발행) 『용인군지』내 용인지도(1899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朝鮮總督府圖書之印 김명섭,『한국사가 기억해야 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 2015,86∼94쪽 머내여지도팀, 『머내여지도 연구자료집』1·2권, 경기문화재단, 2017. 용인문화원 편, 『한국독립운동과 용인』, 노스보스, 2019, 148~176쪽. 용인문화원, 「안종각 후손 안병화 증언」,『구술생애사』9집,2019, 11-5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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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기도 용인군 수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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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로 190번길 18(수지구 풍덕천로 190번길 18(용인서부경찰서 수지지구대))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지역주민들의 증언(이보영 동천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미루어 현 수지지구대가 수지면사무소 자리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