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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기동 3·1운동 만세시위 집결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시위지는 현재 고기초등 교문 앞이며 마을주민과 용인시에서 제작한 '머내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2018년 이후 이 곳은 머내만세운동의 발상지로 매년 주민자치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의 용인 수지면 고기동의 만세시위 발상지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안종각, 이덕균, 홍재택
관련 내용 용인 수지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오전 8시경 안종각(安鍾珏, 1888~1919)과 함께 고기동 구장 이덕균(李德均, 1879~1955)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덕균은 사환으로 하여금 각 집에서 1명씩 나와 동천리 방면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했다. 오전 9시경 고기리 마을공터였던 현 위치에 모인 주민 100여 명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그 뒤 이들은 아랫마을 동천리로 거쳐 동막골, 하손곡 등의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합세한 뒤 수지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했다.
안종각의 손자(안병화)가 친할머니(정규석)에게 들은 내용에 따르면, 안종각이 화성 남양으로 출가한 누이를 만나러 갔다가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용인에서 만세운동 주도했다고 한다. 3월 30일 안종각은 이불 호청을 뜯어 태극기를 만들고 홍재택(洪在澤, 1870~1951) 등 주민들을 규합하고 구장 이덕균의 동참을 이끌었다. 수지면사무에서 합류했을 때 600명 가량 되어 만세를 부르다가 신갈지서에 출동한 일본 헌병대의 총격을 하러 가다가 안종각이 현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덕균은 안종각이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수지면사무소에 이어 읍삼면사무소가 있는 마북리로 진출했다가 일본헌병의 총격으로 해산했다고 한다. 이후 피체되어 징역 1년 6개월형의 옥고를 치렀고, 구장직도 박탈되었다. 정부는 이덕균 지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안종각 지사에게 1991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수원군 지형도」(1914년 일본 육지측량부 측량, 1937년 발행)
「內秘補360:秘第214號 소요에 관한 보고」(1919.3.31.)
「독립운동에 관한건(제32보)」(1919.3.31.)
「이덕균 판결문」(1919.05.23.)
「이덕균 감시대상 인물카드」
용인문화원,「안종각 후손 안병화 증언」,『구술생애사』9집, 2019, 11-58쪽
김명섭,『한국사가 기억해야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2015, 86∼94쪽
머내여지도팀, 『머내여지도연구자료집』1·2권, 경기문화재단, 2017.
용인문화원 편, 『한국독립운동과 용인』, 노스보스, 2019, 148~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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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고기리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로 385(수지구 고기동 172-1(고기초등학교) 인근)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안종각의 손자 안병화에 따르면 현재의 고기초등학교 정문 입구가 마을 입구의 공터로서 주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고 한다. 1927년 ‘고기강습소’로 개교하여 현재의 고기초등학교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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