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용인 의병 활동지 - 굴암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1919년 당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1999년경부터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완전 변형되었으나 본래 사찰로 추정되는 바위굴은 그대로 있다. 용덕사는 이곳을 ‘굴암’이라 칭하고 그 안에 관음상을 모셨으며 ‘관음루’를 지었다. 용덕사 경전 앞에는 용인시에서 설치한 의병항쟁과 3.1만세운동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
| 정의 | 한말 용인지역 의병활동도 활발히 전개된 곳이다.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임옥여, 정주원, 남상목 |
| 관련 내용 |
1905년 4~5월에는 의병장 이인응(李寅應)이 용인 묵리(墨里)의 굴암(窟菴)을 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죽산군수가 용인 굴암사에서 활동 중인 25명 중 12명을 체포했다고 보고했다. 1907년 5월 22일 임옥여(任玉汝) 부대가 추적하는 일본군 토벌대와 이곳에서 교전을 벌였다. 임옥여는 1907년 8월 중순, 동지를 규합해 이천창의소 좌장이 되어 광주·양근·이천읍을 들러 8월 30일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 후 포군 12명을 인솔하여 광주군 실촌면에 이르러 원주 의병대장의 군량을 사용하여 다시 포군 70여 명을 모집하고 굴암에서 일군과 접전(월일 미상), 사망자 수명을 내고 도주하였다고 한다. 또한 1907년 7월 남상목은 용인군 용천곡(龍泉谷, 현 이동면 천리-오늘날의 백암면 용천동) 중심으로 의병 50여 명을 휘하에 두고 구식총 40자루와 양총(洋銃) 10자루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8월 정주원(鄭周源) 의병장이 굴암에서 30여 명과 함께 거병하였고, 9월 22일에는 중원(中原) 정찰대와 함께 의병을 공격하여 의병 15명이 사망하였다. |
| 참고 문헌 |
<竹山捉匪>,《皇城新聞》, 1905.06.14 <復來屯聚>,《皇城新聞》, 1907.09.25 이인영, 『내고장 용인 독립운동사』, 용인군, 1995. 김명섭,『한국사가 기억해야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 2015,56∼6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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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묵리 |
|---|---|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이원로 471-41(처인구 이동면 묵리 산 57) (용덕사 굴암)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굴암사는 용덕사의 다른 이름이다. 굴암이라는 명칭은 절 뒤에 커다란 굴이 있어 그렇게 불렸다고 하며, 그 굴을 용굴이라고도 한다. 과거 절터는 현재 위치보다 위쪽이었다. 산세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암굴이 있어 의병들이 은거하기 용이했을 것이며 굴암의 바위굴을 통해 산을 넘으면 도주도 수월해 원삼면 문촌리와 죽산으로 이동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