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량장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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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종류 | 거리 |
상태 | 변형 / 현재 김량장은 상설시장인 용인중앙시장과 5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이 공존하는 용인의 중심상업지역이다. 과거 김량장에 비해 중심위치가 중앙으로 확대되긴 했지만 옛 시장 구역을 유지하고 있다. |
정의 | 용인지역 의병운동 및 만세운동의 중심지인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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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일진회 |
관련 인물 | 이익삼, 김장옥, 정원경, 정한기 |
관련 내용 |
김량장(金良場)은 조선시대부터 용인군의 대표적 장시(場市)이자 중요 교통로로서 한말 경기의병들의 출현이 잦았던 곳이다. 1907년 10월 14일에 김량장리에 150여 명의 의병이 나타나 일진회 회원의 집을 불사르고 회원 수명을 체포하여 응징하였다. 1908년 4월 10일에는 용인지역 출신 의병장 이익삼(李益三)이 김장옥, 정원경 등 20여 명과 함께 무기를 갖고 김량시장에 침입해 일진회 회원인 동장 정한기에게서 광목 4필, 짚신 20여 족을 빼앗았다. 9월 21일에는 의병들이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일본군 헌병과 한인 보조원을 응징하였다. 또한 김량장은 5일마다 정기적으로 장이 서는 상권 형성지이며 군청 소재지였기에 독립만세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졸업식에 참석한 김량장공립보통학교의 학생 30여 명이 귀가하면서 만세운동을 벌였고 이들은 김량장시장으로 향했다. 3월 28일에는 300여 명의 주민이 김량장에서 시위를 시작해 용인군청 앞으로 행진하였고 이때 각 지역에서 합류한 시위대가 1천여 명가량 되었다. |
참고 문헌 |
<地方情形>, 《대한매일신보》1907.11.21. <龍仁市場移轉問題 水餘面長에게 一言>, 《동아일보》, 1937.11.11. <龍仁金良場川 堤防工事實測>, 《매일신보》, 1938. 4. 19, 7면.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경기도, 1995, 73~75쪽. 용인시사편찬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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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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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금령로 99번길 일대(처인구 김량장동 133 일대)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김량장은 과거부터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금학천변에 형성된 시장은 상설장과 매 5일마다 열리는 정기장이 있는 곳이다. 금학천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김량장 건너에는 김량장공립보통학교와(현재 용인초등학교) 일본인 학생들이 다니는 용인심상소학교가(현재 KT용인지점) 있었고, 김량장 인근에는 용인군청과 헌병대분대, 일본신사 등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과거 술막다리(금학교) 인근이 주 시장으로 시장의 크기가 확대되면서 현재 지역까지 김량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아일보》1937년 11월 11일 기사에 수여면 용인시장 우시장 이전 문제가 언급되고 있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