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다시흥 광산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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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일제침략·통치·수탈기관 |
종류 | 기타 |
상태 | 현재 광산의 흔적이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동굴 내 폐갱도의 흔적과 동굴 밖에 제련장소의 흔적이 남아있어 활용가능성이 높음 |
정의 | 1903년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금·은·동·납 등의 광물자원을 채굴한 광산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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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
관련 인물 | 有澤寅市, 飯田延太郞 |
관련 내용 |
이다시흠[飯田始興]광산(현 광명동굴)은 1903년 시흥광산으로 설립되어 이후 일제강점기에 금·은·동·납 등의 광물자원을 채굴한 광산이다. 1903년 시흥광산으로 설립되었고 1917년 11월 3일 광업권을 이전, 대리인 변환신청을 하여 광업권자를 飯田延太郞으로 광업대리인을 有澤寅市으로 내세웠다. 이후 1918년 10월 24일 시흥광산사무소를 설치하고 은·동·납 등의 광물자원을 채광하기 시작하였다. 1935년에는 금도 채굴하기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적산(敵産)으로 간주되어 처리되었으며 6·25전쟁 당시에는 도피처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동굴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굴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연인원 500명이 광부로 일할 정도로 규모가 있었으나, 1972년부터 금 채굴량이 급감하기 시작하여 폐광되었다. 이후 새우젓갈 저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가 2008년 광명시가 폐갱도 61만 8천평방미터 규모의 동굴체험테마파크를 조성하여 2011년 '광명동굴'로 개발하였다. |
참고 문헌 |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리-003(임야원도_0043)」, 1918. 정혜경, 『우리 지역의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활용-방안과 사례』, 선인, 2018, 2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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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기도 시흥군 가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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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광명시 가학로 85번길 134-21(가학동 산 7)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