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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관인면 사정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차도가 나 있어 옛 지형이 많이 변형되었으나, 다랑고개의 지형은 남아있다.
정의 4월 10일 경기 연천군 관인면 사정리(현 포천군) 만세시위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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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포천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조아당(趙亞當), 박용길(朴龍吉)
관련 내용 1919년 4월 10일 오전 포천시(당시 연천군) 관인면 삼율리 95번지(현 6사단 신병교육대 건너편 영점사격장 일원) 거주 감리교회 신자 조아당(趙亞當)에 의해 주도되어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당시 19세의 열혈 청년이었던 조아당은 철원읍감리교회(현 철원제일감리교회) 신자였던 조목숙(趙牧淑)의 아들이며, 민족의식과 기독교 신앙이 투철했던 개화인으로, 3월 10~11일 강원도 최초의 철원읍 만세운동, 4월 1일 연천 중면 삼곶리 만세운동에 동참하고 관인면의 만세운동을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4월 8일 관인면에 거주하는 박용길(朴龍吉)과 논의하여 격문을 붙이고 태극기를 제작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4월 10일 오전에 철원 상노2리 담터 입구 신포동에서 만세행진을 시작하여 삼율리 밤나무골까지 남쪽으로 행진했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초과2리 다랑고개에서 대형 기치와 태극기를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사정리 샛청마을 - 초과2리 남창동(현 관인사거리)으로 이동하였다, 6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이 남창동으로 진입할 때 철원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의해 일본 헌병대에 의해 군중은 진압되었고, 조아당과 박용길 등이 현장에서 체포되면서 이날 만세 항쟁 행렬은 강제 해산되었다.
참고 문헌 高 第11167號,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45보)」, 1919.04.12.
密 第102號 其190/第80號, 「電報 : 전국 각지의 시위 상황」, 1919.04.13.
秘受04901號, 「朝鮮ニ於ケル獨立運動ニ關シ四月十三日…」, 1919.04.26.
密受 第102號/軍事密 第60號/陸密 第154號, 「朝鮮의 獨立運動에 關한 件」, 1919.04.28.
騷擾事件報告臨時報 第12號, 「騷擾事件 經過 槪覽表(1919.3.1.~1919.4.30.)」, 1919.05.10.
朝憲警 第107號, 「朝鮮騷擾事件一覽表에 關한 件」, 1919.10.02.
大正8年刑第4782號, 「조아당 판결문」, 1920.01.30.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연천군 관인면 사정리
주소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 산 44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45보)」, 「조아당 판결문」을 통해 만세시위 활동을 확인하였고, 관인면 초과리 마을회관의 박광복 이장님이 다랑고개의 위치를 증언하였다. 김도훈(한국교원대 연구교수)이 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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