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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 터-향사당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애국계몽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신성여학교가 있던 향사당은 1981년 다시 지어졌다. 건물이 길가에 붙어있어 동남향이던 길 방향을 동북향으로 바꾸었다.
정의 1909년 10월 구마슬 신부에 의해 설립되어 제주지역 여성교육기관의 선구적 역할을 한 신성여학교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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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고수선, 최정숙, 권채영, 홍덕행, 강평국, Lacrouts
관련 내용 신성여학교는 1909년 10월 18일 프랑스 선교사 라쿠르(Lacrouts)에 의해 설립되었다. 1908년 라쿠르 신부는 제주지역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선교를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라쿠르 신부는 조선 주교에게 제주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박영효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신성여학교는 신부와 수녀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신부는 학교 관리와 재정 운영 등 외적인 부분을 담당하였고, 수녀들은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교사인 남자 교사들도 재직하였다. 이들은 학생들의 민족정신을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신성여학교는 다양한 학제를 편성하여 운영되었다. 유아교육부터 초등, 중등교육 그리고 야간반까지 운영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한문, 일어, 국문, 산술, 수신 등의 교과목과 생업에 필요한 생계교육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성여학교는 1914년까지 점차 규모를 확장해가며 운영되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선교사들의 이동과 일제의 학교 탄압정책으로 인해 신성여학교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신성여학교는 1916년 7월 25일 자진폐교 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신성여학교의 재개교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신성여학교 출신 학생들과 천주교 차원에서 여수원, 명신학교, 갑자의숙 등을 설립해 신성여학교를 잇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재정 문제와 일제의 탄압에 의해 재개교는 어려움을 겪었고, 야학 운영을 통해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신성여학교는 해방 이후 다시 신성여자중학교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참고 문헌 신성학원총동문회·제주교육박물관, 『초대교육감 최정숙 선생 유품 展』, 2015.
양진건, 「제주도 최초 근대여학교, 신성여학교 연구」, 『耽羅文化』18,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7, 428~442쪽.
안영후, 「개화기 천주교의 제주도 신교육운동 考」, 『한국교육논단』제10권 2호, 한국교육포럼, 2011, 151~168쪽.
박태환, 「제주의 근대 교육운동과 신성여학교 연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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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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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12길 2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최정숙 관련 자료(『초대교육감 최정숙 선생 유품전』)와 향사당 안내표지판에 이곳이 신성여학교로 이용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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