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사교회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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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종류 | 건물 |
상태 | 옛 교회의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은 일반 주택이 들어서 있다. 대사교회는 현재 다른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대사마을 입구에 <항일독립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정의 | 1919년 3월 13일과 16일에 대사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펼친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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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대사교회 |
관련 인물 | 박영화(朴永和), 김옥돈(金玉頓), 이양준(李良俊), 이종출(李鍾出), 이화실(李華實) |
관련 내용 |
의성군에서는 3월 12일과 3월 13일에 이어 3월 15일 안평면 대사동 우리골[尤利谷]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이끈 것은 대사교회이다. 쌍계동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에 의해 각 지역의 만세운동소식이 대사교회에 전달되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대사교회의 김옥돈(金玉頓)·이종출(李鍾出)·이화실(李華實)은 3월 15일 일요일 낮 교회에서 최종 만세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15일 예배를 마친 뒤 이종출과 김옥돈, 집사인 이화실과 이양준(李良俊)을 비롯한 4명이 남아 예배를 보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만세시위를 의논하였다. 이들은 그날 바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하고 일을 나누었다. 이화실과 김옥돈은 마을사람들에게 만세계획을 알렸고, 나머지는 교회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5일 저녁 7시 무렵, 마을 뒷산에는 교인들과 마을주민 60-70명이 모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네를 돌다가 밤 10시 무렵 흩어졌다. 이 날의 만세운동은 별다른 피해 없이 끝이 났다. 그렇지만 대사교회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안평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3월 15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은 5일 동안 계속되었고, 만세 인원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19일 도리원시장의 만세운동은 1,000여 명이 참여한 거군적 3.1만세운동이었다. 그 출발선이 바로 대사교회 만세운동이었다. |
참고 문헌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3·1운동재판기록, 1983, 1306-1309쪽. ○ 김희곤 외, 『의성의 독립운동사』, 의성군, 2002, 226-229쪽. ○ 「이종출 등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19년 5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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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 대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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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북 의성군 안평면 대사2길 112-7 일대 (대사리 588 일대)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이종출 등 판결문」에 관련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대사교회 100년사』와 교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위치를 확정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