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의성의병 전투지-황산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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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종류 | 산야 |
상태 | 황산 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현재 구릉 아래에 사과밭이 있다. |
정의 | 1896년 5월 의성의병이 전투를 벌이다 패하여 27명이 전사한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황산(黃山) 전투, 사촌마을 방화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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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의성의병(義城義兵), 김하락 의병부대(金河洛義兵部隊) |
관련 인물 | 권휘연(權徽淵), 김상종(金象鐘), 김수담(金壽耼), 김수협(金壽莢), 서상부(徐相孚) |
관련 내용 |
1896년 5월 10일(음 3. 28) 황산(黃山)에 주둔하고 있던 의성의병은 관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지형적으로 유리한 고무실[鈷鉧谷]로 진을 옮기기 위해 선발대를 파견하고, 황산에 잠복하면서 적을 기다렸다. 그런데 밤부터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튿날까지 계속 퍼부었다. 이로 말미암아 총구멍에 물이 흘러들어 화약은 물론 옷과 장비도 젖어 못쓰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구와 군위에서 파견된 150명의 군인이 황산으로 들어왔다. 의성의병은 빗속에서 적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으나 권휘연(權徽淵)·서상부(徐相孚)·김수담(金壽耼)·김수협(金壽莢) 등 27명이 전사하고, 크게 패하였다. 김하락 의병부대가 이 무렵 의성에 도착하였으나, 의성의병과 미처 연합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의성의병의 본진이 흩어진 상황에서 황산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관군을 맞아 크게 패한 것이다. 황산전투 후 관군들은 군량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리고 김상종(金象鐘) 의병장의 고향인 사촌마을에 불을 질렀다. 사촌마을 500년 역사가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참고 문헌 |
○ 金會鍾, 『丙申倡義實錄』. ○ 심성지, 『赤猿日記』, 1896. ○ 김원석, 『丙申倡義實錄』을 통해 본 義城義兵」, 『안동사학』 3, 안동사학회, 1998, 108쪽. ○ 김희곤 외, 『의성의 독립운동사』, 의성군, 2002, 82-84쪽. ○ 김희곤·권대웅, 『韓末義兵日記-乙未義兵日記·赤猿日記』, 국가보훈처, 2003, 327-32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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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황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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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북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 1105-182 (1105-182・131, 산80임 일대)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병신창의실록』과 『적원일기』에 관련 역사적 사실이 있다. 2009년 조사 당시 김수기(당시 81세)·김수천(당시 73세) 등 마을주민들의 증언이 있었고, 이번 조사에서 의성의병기념관장 김억 등의 증언도 일치하여 위치를 확정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