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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임용상 생가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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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집터
상태 임용상의 집은 없어지고, 현재 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의 1907년부터 산남의병에 참여하여, 1910년 벌어진 안평전투에서 체포당해 옥고를 치른 임용상이 살던 집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안평전투(安平戰鬪)
관련 조직 산남의병(山南義兵) 
관련 인물 임용상(林龍相), 정환직(鄭煥直)
관련 내용 임용상(林龍相, 1877-1958, 炳五·中虎)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 소식에 김재서(金在瑞) 등과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동해창의대장에 추대된 임용상은 청하(淸河)·영덕 강구(江口)에서 일본군 주둔소를 습격하고 적군 다수를 사살하였다.

1907년 4월 산남의병(山南義陳)이 결성되자, 임용상은 이에 합세하여 유격장 겸 도총장(都總將)이 되었다. 그 뒤 청송·영천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으며, 의병 수백 명을 인솔하고 흥해(興海)지방에서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펼치기도 하였다. 1907년 12월 정용기(鄭鏞基)가 전사하고 그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대장으로 추대되자, 임용상은 총장(總將)이 되어 청송·청하·영덕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10년 봄 산남의병을 다시 정비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이후 군자금을 조달하고 무기를 확보하여 청송·의성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맞섰다. 그러나 안평전투(安平戰鬪)에서 체포되어 1910년 7월 25일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1-의병항쟁사, 1983, 351·389-390쪽.
○ 김희곤 외, 『청송의 독립운동사』, 청송군, 2004, 95-96·100-101·109쪽.
○ 「자천부근의 적도」, 『폭도에 관한 편람』, 1910년 1월 2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임용상 등 판결문」, 대구지방재판소, 1910년 7월 25일.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촌동
주소 경북 청송군  현서면 성덕댐로 699-2 집 뒤 터 (수락리 49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자천부근의 적도」 『폭도에 관한 편람』과 「임용상 등 판결문」에 관련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에 살고 있는 후손 임한칠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재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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