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주청년회 근거지-영주공립보통학교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학교는 그대로이나, 옛 건물은 없어졌다. |
| 정의 | 1920년 6월 19일 영주청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청년회를 결성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영주청년회 창립총회, 단주동맹(斷酒同盟) 조직, 영주청년동맹 설립, 영주격문사건, 광주학생운동 |
|---|---|
| 관련 조직 | 영주청년회(榮州靑年會), 단주동맹(斷酒同盟) |
| 관련 인물 | 김보영(金普榮), 이원박(李源博), 장두규(張斗奎) |
| 관련 내용 |
영주청년회는 1920년 6월 19일 영주공립보통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가지고 결성되었다. 이 날 참가자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2,000여 원의 모금액이 걷히는 등 창립 첫날부터 큰 관심을 보였다. 임원으로는 회장에 김보영(金普榮), 부회장에 장두규(張斗奎), 총무에 이원박(李源博) 등이 선출되었다. 영주청년회는 덕성함양·학문증진·체육발전·풍속교정에 목적을 두었다. 이에 따라 창립 이후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하고, 강습회를 열어 야학운동을 펼쳤다. 또한 단주동맹(斷酒同盟)을 조직하고 그 취지서를 인쇄·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25년 치안유지법 공포 이후, 영주경찰서의 단속이 심해져 청년회 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영주청년회는 1927년 11월 24일 영주청년동맹 설립과 더불어 해체되었다. 영주청년동맹은 창립 후 지부 설치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영주격문사건’이 가장 두드러진다. 1929년 말부터 이듬해 초에 걸쳐 광주학생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자 영주청년동맹원들은 사건발생의 의의를 선전하고 일제에 맞서 강력히 투쟁할 것을 권유하는 유인물을 살포했다. 영주청년동맹은 3월에서 4월에 걸쳐 총 4차례의 격문을 살포하였다. |
| 참고 문헌 |
○ 조선총독부,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1914-1918)』, 경인문화사, 1998, 259쪽. ○ 김일수 외, 『영주독립운동사』, 영주시·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2006, 168-171쪽. ○ 『동아일보』, 1920년 7월 3일, 4면 8단, 「榮州靑年會設立」. 『동아일보』, 1920년 7월 3일, 「靑年會의 斷酒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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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주군 영주면 영주공립보통학교 |
|---|---|
| 주소 | 경북 영주시 광복로 55 영주초등학교 (영주1동 2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관련 역사적 사실은 『동아일보』 1920년 7월 3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위치는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에 의거하여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