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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가네코 후미코 묘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묘소
상태 <박열의사 기념공원> 안에 있으며,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
정의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연성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명 朴文子)의 묘소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히로히토(裕仁) 일왕 암살 기도사건
관련 조직 흑도회(黑濤會) 
관련 인물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박열(朴烈), 김약수(金若水), 정태성(鄭泰成), 정태신(鄭泰信), 조봉암(曺奉岩)
관련 내용 가네코 후미코(이하 가네코)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1920년 신문팔이·식모·인쇄소 여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오뎅집에서 일하며 틈틈이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 다녔다. 1921년 박열·정태신(鄭泰信)·김약수(金若水)·정태성(鄭泰成)·조봉암(曺奉岩) 등과 아나키즘 단체인 흑도회(黑濤會)를 만들었다. 가네코는 박열과 함께 이 회의 기관지 『흑도』의 발간을 맡았다.

1923년 가을에 열릴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 소식을 듣고, 그곳에 폭탄을 던져 황태자와 정부고관을 처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간토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박열과 가네코는 체포되었고, 폭탄구입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박열과 가네코는 검찰에 기소된 1923년 10월 24일부터 1925년 6월 6일까지 각각 총 21회와 23회에 걸친 신문(訊問)을 받았다.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26년 7월 23일,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네코 후미코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부모는 끝내 가네코의 시신을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가네코는 남편 박열의 고향 문경 팔령에 묻히게 되었다. 그 뒤 박열의사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조성되자, 가네코의 묘소도 <박열의사 기념공원>으로 이장하였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 문경문화원, 『문경의 의병과 독립운동사 연구』, 2009, 202-206쪽.
○ 『연합신문』, 1949년 6월 2일, 3면 11단, 「朴烈氏夫人墓尋訪」.
○ 「박열과 후미코 판결문」, 도쿄대심원, 1926년 3월 25일.
○ 「박열과 후미코 판결문」, 도쿄대심원, 1926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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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동 샘골
주소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 박열의사기념관 경내 (오천리 9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박열의사 기념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金子文子女之墓>라는 묘비 등이 있어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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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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