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중언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자정순국 |
| 종류 | 집터 |
| 상태 | 옛 터는 안동댐건설로 수몰 지구에 들어갔고, 사랑채는 토계리로 옮겨졌다. |
| 정의 | 의병에 참가하고 1910년 나라가 멸망하자 단식 순국한 동은 이중언의 집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임오군란, 을사늑약, 대한제국 멸망 |
|---|---|
| 관련 조직 | 예안의병(禮安義陣) |
| 관련 인물 | 이중언(李中彦), 이만도(李晩燾) |
| 관련 내용 |
이중언(李中彦, 1850-1910)은 경북 안동 출신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이명은 문석(文錫), 자는 중관(仲寬), 호는 동은(東隱)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나라가 혼란하자 봉화(奉化)의 임당산(林唐山)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지내다가 1896(음 1895)년 전기의병 때 예안의병에 참가하였고, 전방장(前方將)으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고, 족숙인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단식 순국하자 그는 통분하여 집 밖에 좁다란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때로는 을사늑약 당시 상소하였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선조의 사당과 묘를 참배한 뒤 수십일 식음을 전폐하였다. 이 무렵 일본 경찰 몇몇이 와서 음식을 먹도록 권하라고 식구들에게 협박하였으나, 그는 "저 놈을 쫓지 않으면 내가 찔러 죽이겠다."고 고함쳐 내쫓았다. 1910년 11월 초 주위사람들에게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추게 한 뒤 숨을 거두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이중언, 『東隱實紀』 「고종일록」. ○ 김희곤 외, 『순절지사 이중언』, 경인문화사, 2006, 15·54-59쪽. ○ 『東隱實紀』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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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면 토계동 |
|---|---|
| 주소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2-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東隱實紀』 「고종실록」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선행연구 『순절지사 이중언』에 의거하여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