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협동학교 임시교사-백하구려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협동학교 교사로 이용되었던 백하구려의 별채 사랑은 없어졌으나, 축대와 초석일부가 사랑채 앞에 남아 있다. |
| 정의 | 백하 김대락의 생가로 1909년부터 1910년까지 협동학교 교사로 활용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협동학교 |
| 관련 인물 | 김대락(金大洛) |
| 관련 내용 |
백하구려(白下舊廬)는 1909년부터 1910년까지 협동학교(協東學校) 교사로 활용된 집이다. 이 집 주인이었던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은 1907년 내앞마을에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가 설립되자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다가 1909년 초에 이르러 신교육을 수용하면서 백하구려를 협동학교 교실로 제공하고,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러한 변화는 안동은 물론 영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10년 나라가 멸망하자 김대락은 마을과 인근의 청장년들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김대락은 한인들을 지도하고,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심혈을 기울이다가 1914년 12월 10일 삼원포 남산(藍山)에서 작고하였다. 김대락의 뜻은 여동생인 김락(金洛), 집안 조카 김만식(金萬植)·김정식(金政植)·김규식(金圭植), 종손자 김성로(金成魯)의 항일투쟁으로 계승되어 나갔다. 나라에서는 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유공자로 포상하고, 2009년 백하구려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
| 참고 문헌 |
○ 조동걸, 『한국근현대사의 탐구』, 경인문화사, 2003, 253-254쪽. ○ 강윤정, 「백하 김대락의 현실인식과 민족운동」, 『백범과 민족운동연구』 7, 백범학술원, 2009, 63-86쪽. ○ 『황성신문』, 1909년 5월 8일, 2면 1단, 「嶠南敎育界에 新赤幟」.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안동군 임현내면 천전리 김대락 가옥 |
|---|---|
| 주소 | 경북 안동시 임하면 내앞길 35 백하구려 (천전리 25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성신문』 1909년 5월 8일자 기사에 관련내용이 있다. 백하구려는 건물이 남아있어 현재의 위치를 사적지로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