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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주재소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만세시위가 펼쳐졌던 주재소는 없어졌다. 그 자리는 현재 경안재(慶安齋)가 들어 서 있으나, 현재 관리가 소홀한 상태이다.
정의 1919년 3월 21일 350여 명의 길안면민이 만세운동을 펼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길안면 3.1운동 만세시위(3월 21일)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정연(金正演), 김정익(金正翼), 손영학(孫永學), 정성흠(鄭成欽), 김술병(金述秉), 김필락(金珌洛), 손두원(孫斗源)
관련 내용 길안면 시위는 3월 21일 장날을 이용하여 임하면 오대동의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의 주도로 펼쳐졌다. 여기에 오대동 인물로 서울에서 광무황제 인산에 참가한 정성흠(鄭成欽)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장터를 돌다가 면장과 면서기들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 순사가 시위대를 막고 나서자 350여 명의 시위대는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출입문을 부수었다. 이어 시위대는 300여 미터 떨어진 길안면 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 유리창을 부수기 시작하자, 순사들은 공포탄을 쏘기 시작하였고 시위대는 흩어졌다.

그 다음날 길안주재소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술병(金述秉)과 정성흠을 붙잡아 갔다. 24일에는 손두원(孫斗源)이, 26일에는 김필락(金珌洛)이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이 두 사람은 천지장터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이들을 실제 주동자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날의 시위로 인해 모두 13명이 실형을 언도받고 곤욕을 치렀다.
참고 문헌 ○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28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3·1운동재판기록, 1983, 1364-1366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3·1운동사(하), 1983, 400-402쪽.
○ 김희곤, 『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300-303쪽.
○ 조선총독부,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1914-1918)』, 경인문화사, 1998. 206쪽.
○ 「장두희 등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1919년 5월 3일.
「손영학 등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0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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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안동군 길안면 천지동 산하리
주소 경북 안동시  길안면 산하리길 2-5 (천지리 10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장두희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2009년 조사 당시 『近世韓國五萬分之一地形圖』와 배연호(당시 83세) 외 마을 노인들의 증언에 의거하여 확정하였다. 이번 심화조사에서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DB 관리시스템의 지도와도 일치하여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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