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명균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 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현재 집은 멸실 되었고,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
| 정의 | 파리장서운동과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에서 활동한 이명균이 태어나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파리장서운동,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 |
|---|---|
| 관련 조직 | 광복회(光復會), 해인사(海印寺),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 |
| 관련 인물 | 이명균(李明均), 김찬규(金燦圭), 신태식(申泰植), 이응수(李應洙), 편강렬 |
| 관련 내용 |
이명균(李明均, 1863~1923)은 일제강점기 김천출신 독립운동가로 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편강렬과 함께 해인사를 방문예정인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데라우치의 해인사 방문이 취소되어 실패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명균은 경북을 순회하면서 조직적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으나 ‘만명탄원서’를 동지들이 제출하여 석방되었다. 이후 파리장서운동에도 서명하여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20년 3월 이명균은 문경의병장 신태식(申泰植)과 김찬규(金燦圭)·이응수(李應洙) 등 20여 명과 함께 나곡산재(羅谷山齋)에서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을 결성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후원하였다. 그는 군량총장으로서 재정 관리 및 군자금 조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
| 참고 문헌 |
○ 송기호, 『김천항일독립운동사』, 김천시 주민생활지원과, 2015, 275-286쪽. ○ 「이명균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3년 9월 30일. 「이명균 집행원부」. 「이명균 형사사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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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 |
|---|---|
| 주소 |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2길 10-18 옆 밭 (상좌원리 169-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명균과 사촌관계인 이석균의 후손이 이명균 집의 위치를 증언해주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