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현재 대봉도서관과 우방청운맨션이 자리하고 있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대봉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이후 체육시설로 변경될 예정이라고 한다. |
| 정의 | 1926년 2월 27일부터 일제의 비교육적 행위 및 민족적 차별에 동맹휴학을 일으킨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시장정 3.1운동 |
|---|---|
| 관련 조직 | 사립협성학교(私立協成學校) |
| 관련 인물 | 양재기(梁在淇) |
| 관련 내용 |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학생들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3.1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919년부터 지속적으로 일제의 탄압에 대해 동맹휴학으로써 항거하였다. 특히 1925년 2월 3일, 대구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에서 학생들이 학교 측에 제시한 요구 사항은 ① 조선역사를 가르칠 것, ② 악질 일본인 교유(교사) 축출, ③ 조선인 교유 증원, ④ 학생들의 서신 검열 중지 등이었다. 또 1926년 2월 27일에는 담임교원이 조선인은 야만인이라고 모욕하자 2·3학년생들이 동맹휴학을 일으켰다. 이러한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은 식민지 교육과 민족차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대구고등보통학교는 1916년 5월 16일 대구향교 내의 사립협성학교(私立協成學校)를 인수하여 대구고등보통학교로 설립되었다. 교사는 한문(漢文)을 담당하는 양재기(梁在淇) 선생 외에는 모두 일본인 교사였다. 이후 1917년 대봉동(大鳳洞) 신교사(현 우방청운맨션 자리)로 이전하였으며, 1925년 4월에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1938년에는 경북중학교로, 1953년에는 경북고등학교로 개명되었다. 학교의 위치도 1954년 대명동(大明洞)으로 이전하였다가 1959년 다시 대봉동으로 돌아왔으나, 1985년 현재의 수성구 황금동으로 교사를 신축하여 옮겨갔다. |
| 참고 문헌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3-학생독립운동사자료집, 1983, 851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학생독립운동사, 1983, 438-442쪽. ○ 향토역사관,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 향토역사관, 2008, 90쪽. ○ 김일수, 「1920년대 대구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대구보고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21,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137-138쪽. ○ 『동아일보』, 1926년 3월 1일, 2면 3단, 「대구고보생맹휴」. ○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 90쪽. ○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1:10,000 昭和12年 修正測圖」, 1937, 대구향토역사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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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
|---|---|
| 주소 | 대구 중구 동덕로 33 (동덕로 33 우방청운맨션, 대봉로 210 대봉도서관 일대/ 대봉1동 111-1, 대봉동 11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6년 3월 1일자 기사에 관련 내용이 있다. 1937년 「1:10,000 昭和12年 修正測圖」와 10년 전 향토역사관 이호 학예사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