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종암 군자금 모금 활동지-대구은행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 독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건물의 외부는 일부 남아있으나 내부는 사우나 시설로 바뀌었다. |
| 정의 | 1917년 대구은행에 근무하던 이종암이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1만 9천원(員)을 탈취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의열단(義烈團) |
| 관련 인물 | 구영필(具榮珌), 김병환(金餠煥), 배중세(裵重世), 이기양(李起陽), 이병태(李丙泰), 이병호(李丙浩) |
| 관련 내용 |
이종암(李鍾巖)은 의열단(義烈團) 부단장이었다. 그는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농업학교를 거쳐 부산상업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916년경 대구은행에 취직하여 출납계 주임으로 금고를 담당하였다. 이종암은 1917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금고에서 1만 9천원(圓)을 꺼내 중국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러다 그는 일본 왕궁을 폭파할 생각으로 1925년 국내에 들어와 1만 9천원 중에서 7천원을 맡겨 놓았던 구영필(具榮珌)에게 돈을 찾으려 하였다. 이종암이 국내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얻은 일제 경찰은 경남 밀양(密陽)에서 이종암을 만났다는 이병태(李丙泰)·이병호(李丙浩)·김병환(金餠煥) 등을 붙잡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이종암이 달성군 달서면 노곡리(현 대구광역시 노곡동)의 이기양(李起陽) 집에 은신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1925년 11월 5일 배중세(裵重世)와 함께 붙잡히고 말았다. 이종암은 종심에서 1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30년 6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 東亞經濟時報社 編,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東亞經濟時報社, 1923, 13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1-의열투쟁사자료집, 1983, 392쪽.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의열투쟁사, 1983, 522쪽. ○ 이종범, 『의열단 부장 이종암전』, 광복회, 1970. ○ 이동언, 「이종암의 생애와 의열투쟁」, 『한국독립운동연구』 4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2. ○ 『동아일보』, 1926년 11월 11일, 2면 1단, 「경북중대사건의 기일」. 『동아일보』, 1926년 12월 20일, 2면 5단, 「경북의열단사건 공소기록」. ○ 「이종암 등 3인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6년 12월 28일.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1:10,000 昭和12年 修正測圖」, 1937, 대구향토역사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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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부 본정 1정목 52 |
|---|---|
| 주소 | 대구 중구 서성로1가 109-1 (경상감영길 1 삼정헬스사우나 )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종암 등 3인 판결문」, 『동아일보』,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1937년 「1:10,000 昭和12年 修正測圖」를 확인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