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곽한일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집터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
| 정의 | 홍주의병장 곽한일이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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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곽한일(郭漢一, 1869~1936)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어려서 충남 아산으로 이주하여 거주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3월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병이 청양에서 결성되었다. 곽한일은 여기에 참여하여 돌격장·소모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06년 홍주성전투에서 일본군한테 체포되어 1907년 평리원에서 종신유배형을 선고받고 전남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 그는 1912년 유배에서 풀려나자 임병찬 등이 결성한 독립의군부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1913년 8월 독립의군부의 실체와 조직이 드러나 다시 체포되어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군자금 모금 등 계속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1916년 종신 집행유예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곽한일 판결문」, 평리원, 1907년 7월 2일. 「곽한일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13년 8월 13일. 송용재,『홍주의병실록』, 홍주의병유족회, 1986, 467쪽. 김상기,「1906년 홍주의병의 홍주성전투」,『한국근현대사연구』37,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 126-157쪽. 충청남도·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충남의 독립운동가1』, 2011, 76-7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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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온양군 송악면 역촌리 |
|---|---|
| 주소 | 충남 아산시 |
| 도로명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길 9-5 |
| 위치 고증 | 「곽한일 판결문」과「곽한일 공적조서」에 주소가 명기되어 있으며, 후손인 곽명신의 고증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곽한일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13년 8월 13일)
곽한일 집터 전경
1980년대 곽한일 집터(『홍주의병실록』에 수록)
곽한일 집터(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