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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 유림단 독립청원서 작성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국내독립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건물의 일부 구조가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정의 1920년 음력 11월경 권상익이 유림단 이름으로 중국 대통령과 대신들 앞으로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0.11(음력) 제2차 독립청원운동(제2차 유림단의거)
관련 조직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인물 이중업(李中業)/권상익(權相翊)/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손후익(孫厚翼)
관련 내용 1차 파리장서의거에도 불구하고 파리강화회의에서는 한국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않자 유림들은 다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것이 1920년 음력 11월경에 있었던 제2차 독립청원운동이다. 이는 2차 유림단의거로 불린다.

2차 유림단의거는 1920년 음력 11월경 이중업(李中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주역 가운데 한사람이 권상익(權相翊)이다. 권상익은 유림을 대표하여 '중국 대통령 쑨원[孫文]'과 '중국 대신들'에게 보낼 청원서 각 1통씩을 작성하였고, 장석영(張錫英)이 중국군벌 우페이푸[吳佩孚]에게 보낼 청원서 1통을 작성하였다. 권상익이 이 청원서를 작성한 곳이 봉화군 내성면 유곡동에 있는 추원재(追遠齋)이다.

권상익이 작성한 글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대신하여 보내는 형식으로 꾸며졌는데, 한국과 중국은 매우 긴밀한 관계이므로 중국이 맹방으로서 책무를 다해 주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이었다. 2차 유림단의거가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 경찰이 1926년 4월 12일 김창숙(金昌淑)의 사돈이자 장서에 서명한 손후익(孫厚翼)의 소지품에서 청원서를 찾아내면서였다.

추원재는 충재(冲齎) 권벌(權橃)의 손자인 권래(權來)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장자인 권상충(權尙忠)이 1621년(광해군 13)에 건립하고 증손인 권두웅(權斗應)이 1671년(현종 12년) 증축하는 등 수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추원재는 상실(上室)과 동루(東樓)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실은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의 재실건물로 ‘추원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누각 건물로 심벽 없이 판벽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 문헌 권상익, 『성재집(省齋集)』, 1938.
김희곤 외, 『봉화의 독립운동사』, 봉화군, 2007, 195~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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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 유곡동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1242
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로 168-26
위치 고증 권상익의 『성재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추원재는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 있어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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