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회문산지구 전투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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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종류 | 산야 |
상태 | 원형보존 / 회문산 일대의 산야는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지역 빨치산사령부 자리에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다. |
정의 | 1951년 10월 경찰 제203, 205부대와 보아라부대, 순창경찰서 등이 군산 주둔 미군 전차대대와 폭격기의 지원을 받아 토벌한 뒤 수복했던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회문산지구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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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한국 제203 경찰부대, 한국 제205경찰부대, 전북도당 |
관련 인물 | 방준표 전북도당위원장 |
관련 내용 |
중공군 제3차 공세가 개시된 직후 회문산 일대에서는 북한군 빨치산들이 한국군경의 후방을 기습하여 교란하고 있었다. 회문산 일대는 지리산 지구와 마찬가지로 1951년 3월까지도 거의 빨치산 치하에 있었다. 특히 정읍·고창·남원·임실·순창 5개 군은 대낮에도 시가지가 습격을 받을 정도로 치안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 지역 빨치산사령부 사령관은 전북도당 위원장이었던 방준표로, 휘하에 이택부대, 보위부대 등의 직속부대와 군당 부대 등 2천여 명이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1951년 10월 경찰 제203·제205부대와 보아라부대, 순창경찰서 등이 군산 주둔 미군 전차대대와 폭격기 3대의 지원을 받아 쌍치·복흥·구기 일대를 수복했다. 이 때 사살 인원은 많지 않았으나 20명을 생포했으며 31명을 귀순시켰으며 실탄 15,000발을 노획했다. 또한 1952년 7월 13일부터 18일까지 육군 제1사단 11연대가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임실 북쪽 13㎞ 지점 갈미산에 배치되었던 제1대대는 백련산을 경유하여 회문산 북동쪽으로 진출하였으며, 제2대대는 임실 남쪽 오암리에서 회문산 동쪽부터 수색작전을 전개하였다. 제3대대는 회문산 북쪽으로 진출하였다. |
참고 문헌 |
한국경찰사편찬위원회, 『 한국경찰사』 2, 내무부 치안국, 1973, 415쪽. 육본 정보참모부, 『 공비연혁』, 1971, 503-5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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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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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산3-1 일대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249 일대 |
위치 고증 | 『한국경찰사』2권, 『공비연혁』에 의하면, 경찰부대와 육군 제1사단 11연대가 지형이 유리한 회문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전북도당부대를 토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