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미호천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도로가 정비되면서 주변지역이 일부 변하였다. |
| 정의 | 1950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국군 수도사단과 제2사단이 북한군 제2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청주 북방 팔결교와 미호천 주변에서 방어전투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진천 전투, 미원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수도사단, 북한군 제2사단 |
| 관련 인물 | 김홍일, 김석원, 이청송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 10일 진천탈환작전을 전개하고 있던 수도사단과 제2사단은 군단장 김홍일 소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미호천 남안으로 철수하였다. 수도사단의 주력부대는 24시경 미호천 남쪽의 북일초등학교와 그 주변에 집결하였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2개 연대병력이 오창 북동 불당산과 남서 229고지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미호천 도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도사단은 공군에 항공지원을 요청하여 F-51전투기 2개 편대(8대)가 오창 일대의 북한군 집결지에 대해 기총사격과 네이팜탄 공격을 가하였다. 수도사단은 북한군이 도하준비를 강행하자, 13시 40분에 미호천의 유일한 교량인 팔결교를 폭파하였다. 북한군은 공중 폭격에도 불구하고 14시경 화산리에 도하준비를 위해 1개연대 규모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적의 집결상황을 확인한 사단장 김석원 준장은 군단에 포격지원을 요청하여 포 11문으로 집중포격을 실시하였다. 이 포격으로 북한군은 800여명의 인명피해를 입고 일시 저지되는 듯하였으나. 야간에 다시 도암리, 팔결교 및 석우리 일대에서 도섭 가능지점을 탐색하였다. 이에 국군 제18연대와 제1연대는 포병의 탄막사격과 전후 저격사격으로 도섭을 시도하는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던 북한군은 13일 4시부터 미호천 남안의 아군 진지에 30여 분동안 포화를 집중한 후에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도하하기 시작하였다. 수도사단은 5시간동안 격전을 지속하였으나 전력의 열세로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군단장은 수도사단장에게 청주 남쪽 431고지 - 국사봉간에 저지진지를 점령하고 진지구축에 주력하도록 명령하였다. 북한군 제2사단은 포병을 중앙에 배치한 후에 시가지에 포격을 가하면서 청주로 접근하였고, 청주의 서북쪽과 서쪽으로 기동하여 자정 무렵에 청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
| 참고 문헌 | 제37보병사단,『 충북지역전사』, 충청북도통합방위협의회, 2000, 176-180쪽. 국방군사연구소,『한국전쟁』(상), 1995, 216-2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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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팔결다리 일대 |
|---|---|
| 주소 |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가곡리 510-1 (오창면 팔결교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충북지역전사』에 국군 수도사단과 제2사단이 북한군 제2사단과 전투를 치렀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전투도를 참고하여 팔결교 부근으로 위치를 비정하였다. |














오창면 입상리 입상교에서 바라본 팔결교와 미호천 일대
오창면 탑리 방면에서 바라본 팔결교와 미호천 일대
팔결교 삼거리에서 바라본 공항대교와 미호천 일대
팔결교 삼거리에서 바라본 팔결교
540번 도로에서 바라본 팔결교와 미호천 일대
팔결교 삼거리에서 바라본 팔결교와 미호천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