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월 망경대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재반격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일부 도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망경대산과 수라리재를 비롯해 인근 고지군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1년 1월 19일 국군 제7사단 제3연대와 제3사단 제23연대가 포병화력과 항공지원하에 북한군 제9사단을 역습하여 격퇴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중공군 제3차공세, 유엔군의 재반격 |
|---|---|
| 관련 조직 | 국군 제7사단 제3연대, 제3사단 제23연대, 북한군 제31사단 |
| 관련 인물 | 유재흥, 최석, 김형일, 정진, 김종순 |
| 관련 내용 |
망경대산 전투는 국군 제7사단 제3연대와 제3사단 제23연대가 석항에서 영월을 목표로 공격하던 중 1951년 1월 19일 포병화력과 항공지원하에 망경대산으로 침투한 북한군을 격퇴하고 영월 공격의 교두보를 확보한 전투이다. 1951년 1월 초 북한군 제2군단(제2, 제9, 제10, 제31사단)은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 사이에 생긴 제천 - 영월 간의 약 24㎞의 배치공간을 이용하여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계속 남하하였다. 동부전선의 상황을 분석한 제8군사령관은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에 지역내의 통로를 차단하여 침투한 북한군을 격멸하도록 명령하였다. 미 제10군단의 우측에서 작전을 전개하게 된 국군 제3군단은 영월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1월 18일-19일 제7사단 제3연대와 배속된 제3사단 제23연대를 석항에서 영월로 공격하여 북한군 제9사단을 격퇴하고 망경대산과 매봉을 확보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라리재를 통해 철수하는 북한군 제31사단 병력이 국군의 포위망에 걸려 상당한 병력 손실을 입고 분산 철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370-375쪽.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8, 2011, 260-2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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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 |
|---|---|
| 주소 | 강원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 산 60-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중권 370-375쪽에 의하면, 국군 제7사단 3연대와 배속된 제3사단 제23연대가 영월을 확보하기 위해 망경대산을 공격해 점령하였음이 확인된다. |














영월부근 전투(1951. 1. 18~1. 22)
화원리에서 바라본 망경대산
망경대산 입구
수라리재에서 바라본 망경대산
영월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망경대산 수라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