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우정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현재 우정면사무소 터는 작물을 재배하는 밭으로 변해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만세시위 전개 중 시위대에 의하여 파괴된 우정면사무소 터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정순영(鄭淳泳), 이순모(李順模), 이봉구(李鳳九), 정준팔(鄭俊八), 김현묵(金賢默) |
| 관련 내용 | 장안리면사무소의 시위대가 쌍봉산으로 출발하여, 쌍봉산 남서쪽 3.5km 떨어진 우정면 화산리(사기말) 우정면사무소에 오후 3시경 도착했다. 우정면장 및 면서기들은 이미 다 도망치고 없었으며 수촌리의 사환 정순영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 이렇게 왔으니 힘이 있는 한 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 밥을 마지막 먹는 날이다. 이런 때에 활동하지 않는 놈은 때려죽여라" 하면서 연설했다. 이순모와 이봉구 두 명이 몽둥이를 들고 현관 입구의 유리창을 부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1천 5백명의 군중이 14평 정도 규모의 초가집인 면사무소를 돌과 몽둥이로 쳐부수고, 서류상자·탁자·의자 및 비치된 장부·서류 전부를 태웠다. 조암리 정준팔이 김현묵에게 태극기를 흔들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면서 태극기를 들게 하고 20여명의 사람들은 우정면장 최중환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모두 수건으로 머리띠를 하거나 눈만 내놓기도 했다고 한다. 3시 반경 약 2천명의 시위군중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화수주재소로 갔다. 이후 가장 격렬한 수원지역의 대표적 사례인 화수리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
| 참고 문헌 |
「김현묵 등 판결문」, 1920년 8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현묵 등 27인 판결문」, 1920년 12월 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48∼37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 1971, 160∼162쪽. 화성시사편찬위원회,『화성시사』Ⅰ, 화성시, 2005, 569∼580쪽. 이정은, 「화성군 장안면·우정면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9, 1995. 이용창, 「재판 관련 기록으로 본 화성 장안·우정면 3·1만세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62, 2018.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화산리-003(임야원도_0093)」,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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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사기말 |
|---|---|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사기말길 3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현묵·차병혁 등 장안면·우정면 만세시위 관련 인물의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화성지역 3·1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 표기된 우정면 화산4리 557-1번지 및 1917년 제작된 1:50,000 지형도를 확인하고, 화산4리 이장 기장호(奇章浩) 씨의 증언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시위 직후 우정면사무소 현장 그림(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