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군산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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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종류 | 거리(시장) |
상태 | 변형 / 시장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조금 위치를 바꾸어 현대식 상가로 변모하였다. |
정의 | 1919년 3월 5일에 옥구군 영명학교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시민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인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1919.3.5 군산장터 독립만세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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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 영명학교 |
관련 인물 | 박연세(朴淵世)/이두열(李斗悅)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5일 옥구군에서는 구암동 영명(永明)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3월 6일 군산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런데 3월 5일 새벽 시위 주모자인 박연세 등이 체포되자, 3월 5일 영명학교 학생들은 8시경 학교 교정에 모여 주모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군산장터로 행진하였다. 군산시장은 5일장으로 사람들이 붐비었고 장터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은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계속하여 가두행진을 하며 군산경찰서로 진입하였다. 경찰서로 진입한 시위대는 이두열·박연세 등의 교사와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현재의 대명동과 인접한 신영동 지역은 1912년 군산에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 5일장이 열렸고 1929년 10월 대명동 부근에 흩어진 노점상을 규합하여 상가시장을 이루었다. |
참고 문헌 |
「이두열 등 37인 판결문」, 1919년 4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군산일보』, 1933년 1월 1일, 「군산부구획확장지도」.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 출판국, 1959, 902~90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23~525쪽. 김양규,『우리 고장의 항일운동사 - 옥구농민의 항쟁운동사』, 군산문화원, 2001, 125~127쪽. 김중규,『군산답사여행의 길잡이』, 나인, 2003, 31~38쪽. 전라북도,『근대문화유산 목록화 및 조사보고서』, 2004, 504~5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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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군산부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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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전북 군산시 신영동 18 |
도로명 주소 | |
위치 고증 | 「이두열 등 37인 판결문」과『독립운동사』3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군산부구획확장지도」와「군산시가지도」를 참고하여 위치를 확정했다. 기존의 3·1운동 만세시위지는 경포 부근의 서래(설애)장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군산공설시장은 1912년 군산에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 5일장이 열렸던 곳이며, 1930년대의 지도에 표시된 시장이 현 장소이기 때문에 당시의 시장은 공설시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