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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장연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장연면사무소 건물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현재 게이트볼장이 되어 있다.
정의 1919년 4월 1일과 2일 괴산군 장연면 주민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의현(金義玄)/김의대(金義大)/지도원(池道元)/양신집(梁信集)/정해문(鄭海文)/김일곤(金日坤)/박영래(朴泳來)
관련 내용 괴산군의 만세시위는 3월 19일 괴산시장에서 시작되어 군내 각지로 전개되었다. 장연면 오가리 신촌에 사는 김의대는 1919년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머물던 중 3월 1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고, 서울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알고 고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독립가(獨立歌) 1통을 입수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김의대는 동지를 규합하였다. 4월 1일 밤 김의대·김의현의 주도로 오가리 주민 김일곤·정해문·양신집 등과 함께 자신의 마을에서 거사를 계획하였다.
4월 1일 약속대로 오가리 장연면 사무소 앞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선 김의현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김의대가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흥분한 시위군중은 면사무소로 돌진하여 면사무소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였다. 시위를 마치고 귀가한 김의현은 자신의 집에 주도 인사 및 주민 30여 명을 모이게 하고 다음날 다시 면사무소에 모여 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 밤, 2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서류도 파기하였다. 일제는 연풍면에서 군대를 출동시켜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연행하였다. 이로 인해 김의대는 징역 3년, 김의현은 징역 2년, 양신집·김일곤·지도원·정해문은 각각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김의현·김의대에게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김일곤·지도원·정해문·양신집에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괴산」,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김의대 외 6인 판결문」(1919년 5월 8일, 공주지방법원청주지청).
「김의대 외 4인 판결문」(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형사부).
「김의대 외 4인 판결문」(1919년 8월 16일, 고등법원형사부).
「朝鮮總督府 內秘補 426; 忠北機第258號: 地方狀況報告」, 1919년 4월 3일, 『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 4.
「朝鮮總督府 內秘補 433; 忠北機第269號: 地方狀況報告」, 1919년 4월 5일, 『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 4.
「槐山騷擾公判, 주모자 징역 삼년」, 『매일신보』, 1919년 5월 10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57~5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1082~1083쪽.
박걸순, 『괴산지방 항일독립운동사』, 괴산문화원, 1996, 111쪽.
오대록, 「괴산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의의」, 『충북의 3·1운동, 그 기억과 기념』, 충북연구원, 2019, 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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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주소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510-1(미선로오가3길 7-1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의대 등 7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14~1918년 제작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와 주민 조수만씨의 증언을 통해 현재 장연면사무소 앞 게이트볼장이 당시 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임이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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