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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향산고택 - 이만도 집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가옥
상태 원형보존 / 원래의 위치에서,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나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정의 한말 의병장이자 1910년 10월 단식 순국한 이만도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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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중업(李中業)/김락(金洛)/이동흠(李棟欽)/이종흠(李棕欽)
관련 내용 향산고택은 한말 의병장이자 1910년 10월 10일(음력 9월 8일) 단식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와 그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을 펼친 아들 이중업(李中業, 1863~1921), 며느리 김락(金洛, 1862~1929), 손자 이동흠(李棟欽, 1881~1967)과 이종흠(李棕欽, 1900~1976) 등이 살던 집이다.

이만도는 1895년 12월 을미의병이 일어날 때,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만행을 규탄하고 '을사늑약'의 파기와 조약에 찬동한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유서를 지어 놓고 단식을 시작한지 24일만인 같은 해 10월 10일(음력 9월 8일) 순국하였다.

이러한 그의 뜻을 아들 이중업이 이어갔다. 이중업은 부친과 함께 예안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파리장서의거'를 이끌었다. 1920년 11월부터 중국의 쑨원[孫文]과 우페이푸[吳佩孚]에게 독립청원서를 보내려고 노력하다가 1921년 7월 23일 출국 직전에 사망하였다.

며느리 김락은 1919년 3월 안동지역에서 일어난 3·1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 두 눈을 잃었다. 손자 이동흠은 광복회에서 활약하였으며, 이종흠은 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하였다.

향산고택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사랑채와, 정면 5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ㄷ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는 튼 口자형 주택이다. 특히 사랑채는 바람막이판을 단 맞배지붕집으로 이 지역 일반주택에서는 보기드문 양식이다. 1973년 8월 경상북도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예안군 의동면 토계동 150번지(해방 후 안동군 도산면 토계동 150번지, 현 안동댐 수몰지구)에 있었는데, 안동댐 공사로 수몰되자 1976년 안동시 안막동 119번지로 이건하였다.
참고 문헌 「이만도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송영호 등 12인 판결문」, 1927년 3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71, 175~179쪽.
안동청년유도회, 『(민족위해 살다간)안동의 근대인물』, 2003, 191~222쪽.
이만도, 『향산전서』, 한국국학진흥원, 2007.
향산고택(안동의 고가) 홈페이지(http://hyangsan.gotaek.kr).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면 토계동 150
주소 경북 안동시 안막동 119
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297-6
위치 고증 『기려수필』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예안군 의동면 토계동 150(현 도산면 토계동 150번지)에 있었는데, 안동댐 공사로 수몰되자 1976년 안동시 안막동 119번지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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