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마령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시장) |
| 상태 | 멸실 / 장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모두 논으로 변해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3일 진안군 마령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25 진안군 마령면 독립만세시위/1919.4.6 진안군 마령면 독립만세시위/1919.4.13 진안군 마령장터 독립만세시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오기열(吳基烈)/전영상(全永祥) |
| 관련 내용 |
진안군에서 첫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은 1919년 3월 25일 마령 장날을 기해서였다. 수백 명이 참가한 만세시위는 일본 경찰과 헌병대의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진안지역 최대의 만세운동은 마령면에서 전개되었다. 평소부터 국권회복의 길을 모색하던 마령면 출신의 오기열(吳基烈)과 전영상(全永祥) 등은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1919년 4월 6일 일차적으로 수백 명이 마령면소재지인 평지리 뒷산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헌병의 출동으로 제지당하였다. 이후 4월 13일 마령 장날을 기하여 오기열 등이 다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마령 시장과 주변에 몰려드는 군중들은 감격과 흥분에 휩싸였다. 전영상은 시장에서 일본인 경찰을 만나자 달려들어 경찰이 찬 환도를 빼앗아 들고 만세를 부르라고 지시하자 일본인 경찰은 손을 들어 민중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서야 겨우 목숨을 구하여 달아났다. 마령면에서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오기열과 전영상은 체포되어 각기 징역 1년 6월과 1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오기열 등 2인 판결문」, 1919년 4월 2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병헌, 『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 출판국, 1959, 90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546~547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1994, 신아출판사, 371~373쪽. 전주역사박물관·진안문화원, 『전북 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 전주역사박물관, 2003, 102~103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
| 주소 |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126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오기열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옛 장터의 위치는 현지에 거주하는 송상삼씨(86) 등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마령면사무소 옥상에서 본 옛 마령장터
마령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오기열기적비
옛 마령장터 근경
옛 마령장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