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광주 제중원 터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
| 상태 | 멸실 / 당시 건물은 사라지고, 현재 새 건물이 들어 서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0일 광주의 만세시위 당시 배포된『조선독립광주신문』이 등사된 광주 제중원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제중의원(濟衆醫院) |
| 관련 인물 | 장호조(張鎬祚)/황상호(黃尙鎬)/홍덕주(洪德周)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10일 광주(光州)에서의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기독교인이자 제중원의 직원인 황상호·홍덕주·장호조 등은 문서배포를 통한 독립운동 확산의 필요성을 느끼고 병원 지하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조선독립광주신문』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조선독립광주신문』은 서울에서 윤익선이 발행한『조선독립신문』을 본딴 것으로, 황송우(황상호의 가명)의 명의로 발행되었다. 제1호는 1919년 3월 13일 300부가 제작되었으며, 홍덕주와 장호조 등이 큰장터에서 배부하였다. 이어 3월 15일에 제2호가 제작되었으며, 제4호까지 발행하다가 일경에 적발되었다. 이 사건으로 황상호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홍덕주와 장호조는 징역 2년을 6월 언도받았다.『조선독립광주신문』은 목포·영암 등지로도 유입되어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광주 제중원은 미국남장로회 선교부에서 1905년 양림리에서 개원하였으며, 초대원장은 놀란(Dr. Joseph Wavnne Nolan)이었다. 1911년에는 그라함의 현금으로 3층 회색 벽동 건물의 엘렌-래반 그라함병원을 건립하면서 광주지역 근대의료기관의 효시가되었다. 1940년 폐쇄되었다가 1951년 다시 개원하였다. 1970년에 미국남장로회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개칭하였다. |
| 참고 문헌 |
「황상호 등 판결문」, 1919년 5월 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59~560쪽. 광주직할시사편찬위원회 편,『광주시사』2, 광주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93, 473쪽. 박이준,「전남지방 3·1운동의 성격」,『국사관논총』96, 국사편찬위원회, 2001, 1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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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
|---|---|
| 주소 | 광주 남구 양림동 26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상호 등 판결문」과『독립운동사』3 등 자료·논저에 관련내용이 실려 있으며, 당시 제중원 터가 현재 광주기독병원 본관임을 광주기독병원에서 확인하였다. |














조선독립광주신문
신축된 광주 제중원(1934년)
광주 제중원(1917년)
광주 제중원 터 우측
광주 제중원 터 정면(현 광주기독병원)
광주 제중원 터 좌측
광주 제중원 터 후면